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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Mar 11. 2024

단기기억상실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게 맞나 보다


'나는 당신하고 희극이기를 바래'






주말 아침에 문뜩 근사한 브런치를 하고 싶었다. 1시간 정도 진행되던 아침 8시 줌미팅을 마치고 나니 그가 일어나 아침을 먹자고 한다. 오늘 브런치 어때?라고 물었다. 그가 간단하게 먹자고 한다. 알았어요라고 대답한 후 다시 책을 폈는데 왠지 그런 날 있잖아. 근사한 브런치를 먹으면서 기분을 업하고 싶은 날. 아마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 가서 오늘 나가서 먹고 싶어요 맛있는 커피도 하면서 기분내고 와요 했더니 그도 그래요 당신이 원하면 가야죠라고 한다. 


그렇게 집 근처 숨은 브런치 맛집을 찾았다. 2층 단독주택을 카페로 개조해서 운영하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웰컴 카운터에 있는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 앞에는 프랑스 전통케이크 프랑부터 아이싱이 된 시나몬롤, 여러 가지의 스위트 머핀 와 패스츄리, 전통 스콘 그리고 머랭 레드벨벳 등이 벌써 이 집이 심상치 않는 곳이라는 말해주고 있었고 주방에는 호주에서 십 년 정도 거주하면서 요리전문대학도 졸업하고 레스토랑에서 경험도 쌓은 셰프가 음식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록 7:3의 비율로 음식을 섭취하면 헬스로 만들어놓은 몸매를 유지하는데 무리가 없다고는 하지만 운동을 시작한 이후 항상 칼로리를 계산하는 버릇이 생겨서 먹고 싶은 것을 다 주문하지 않으려고 한다. 끓어 올라오는 식욕에 대한 자기 절제를 통해 간단히 브런치 메뉴 하나랑 바닐라 프랑 한 개 그리고 롱블랙 2잔을 시켜서 2층으로 올라갔다.  


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은 식물들과 짝이 다른 테이블과 의자들이 아기자기하고 공간 배치가 정감이 가서 좋았다. 그리고 이뻤다. 대형카페의 썰렁함 보다 친근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 딱이었다. 무엇보다 집 근처에 이런 멋진 브런치 카페가 있다는 것이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발견한 것 같아서 좋았다. 신난 우리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찍어주면서 이른 아침이라 우리 외에는 없는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나온 음식은 진짜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맛을 낸 보통의 너무 단 브런치나 프랑이 아닌 별로 달지도 않으면서 풍미는 제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었다. 연두부보다 부드러운 바닐라 푸딩을 담은 프랑의 겉은 나이프를 대자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부드러운 크림이 흘러내렸으며 크림과 닿은 부분은 쫄깃한 게 식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반으로 쪼갠 크로와상 사이로 넘치도록 담은 델리 스크램블은 어떤 소스를 첨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섯볶음과 바싹한 편마늘 튀김 등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을 내고 있었고 그 위에 고수, 루꼴라 그리고 신선한 딜과 다양한 허브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하얀 치즈가 눈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그도 감탄을 한다. 둘 다 준비된 음식에 큰 만족스러움을 느꼈고 방문한 식당에 나만의 평점 매기기를 하던 나는 이 집에 10점 만점에 9.7점을 주면서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를 그에게도 알렸다. 그런데 문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곳에서 종종 생긴다. 


용인과 대구로 떨어져 지냈을 때는 만나면 그간 못 나눈 정을 나눈다고 알콩달콩하기 바빴는데 이제 가까이 있으니 애틋함도 줄어들고 그 전과 달리 대화가 원활히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더 안 좋은 것은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안 해도 될 말까지 하게 되는 듯하다. 음식을 다 먹고 남은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시작했는지 그가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 사랑이 그의 사랑만 하지 않다고 한다. 그의 사랑을 점점 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자신을 이제 편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그 사람의 나에 대한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안다. 나 몰래 나를 생각해 준비해 놓은 것들, 내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것을 일일이 기억해 두는 세심함, 문뜩 발견한 서랍 속 가지런히 깎아놓은 연필 한 다스,  공부하고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 챙겨주는 따듯한 차 한잔,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있을 때 나를 관찰하며 찍은 내 사진들을 보며 나도 그의 사랑에 감사하고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그에 비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사람의 큰 사랑 안에서 안정감과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더 그를 좋아하게 되고 더 믿게 되고 그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어느 순간부터 지웠다. 내 마음이 이전보다 더 커진 것을 안다. 그렇기에 지난해 그가 뇌경색으로 위독한 상황이 되어서도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의 언어재활을 위해 재활교재 녹음을 비롯해서 회복기간 내내 그와 함께 했으며 이제는 함께 살자는 그의 제안에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온 것인데 내가 자신의 사랑을 점점 더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서운하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생각을 내가 했던가? 


말이 길어질수록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동거인이라는 불안한 상태로 내가 있는 것도 한 몫 한다고 생각된다. 황금 직장과 경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휴직서를 내고, 살고 있던 집도 매매나 전세 처리도 완료하지 못한 채 그의 사업과 관련된 앱 개발에 도전하기 위해 서둘러 여기까지 온 것으로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증명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에 자신이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냐고 한다.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 책임지겠다는 말을 먼저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도 매우 많이, 여러 번, 그런데도 저렇게 말하는 것 보면 역시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https://brunch.co.kr/@ranayim/100


연인끼리 사소한 것으로 다툴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푸느냐인데 그간은 성공적으로 해결해 왔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 고비, 한 단계를 더 넘은 것을 기적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문제들을 해결해 올 수 있었을까? 내가 자신 없는 부분이 인간관계인데. 사실 나는 남들과의 충돌을 피해 왔었다. 왜냐면 회복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불편해서 그 원인을 안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하고는 싸우고 회복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신기했다. 그래서 그와 내가 인연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최근 싸우는 빈도가 잦아지는 것 같다. 가랑비에 옷이 젖고 잦은 잽에 넉다운 되는건데 


우리의 사랑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미래는 내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자신의 수고로 정해놓으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금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해하면 된다. 


지금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일차선으로 보이는 3차원의 세상에서 벗어나면 마치 7층 건물 외부에서 건물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구분이 없는 다차원적 관점에서의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여러 미래의 나의 모습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장 큰 수고스러움을 맡아주신 신께 감사하다. 나는 그냥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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