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와 인식 차이로 인해 미국 살던 2010~2012년 욕먹던 썰
“무슨 차량이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 있는데 잠시 정차할 생각도 없이 그냥 지나간데? 미국 같았으면 말이야 쌍욕에 삿대질까지 당했을 텐데, 대한민국 운전하기 참 좋다~”
근무시간이 종료되자 퇴근 차량이 몰리기 전에 7시로 예정되어 있는 PT(5월 대회 준비 돌입)를 받기 위해 서둘러 퇴근하던 길이었다. 시청 별관 주차장인 세심원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횡단보도 앞 보행자용 디지털 안내판인 AI 디스플레이에 ‘차량 접근 중’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좌우를 살펴보니 좌측에서 차량 세대가 나란히 다가와 내 앞 도로를 망설임 없이 휙~휙~휙~하고 연달아 지나갔고 마침 우측에서 들어오는 차량 한 대도 좌측 편에서부터 지나가는 차량들과 교차하며 내 앞을 휙~하고 지나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다가 주춤거리면서 차량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차량들이 사라진 도로를 건너면서 홧김에 혼잣말을 한 것이다.
궁시렁이라도 하니 언짢은 기분이 좀 풀리기는 하는데 왜 횡단보도 앞 디스플레이에 보행자 대상으로만 ‘차량 접근 중’이라는 주의 멘트가 뜨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행자의 안전이 우선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운전자에게 사각지대나 사건사고 다발구역에 대하여 안전 운전을 위한 도로 상황을 먼저 알려주고 안전운전 습관이 체득되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50 미터 앞 보행자. 우선 정지’라고 운전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보행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쉽고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교통문화가 보행자 중심이 아닌 운전자 중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고착화되어서 차량이 자신의 앞을 휙 하고 지나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마음에 동요가 없다. 차량 지나가요 라며 누르는 운전자의 클랙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면서 동시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만약 차량이 다가오는데도 당신이 기다리지 않고 도로 위를 지나가려 하다가는 이런 말을 듣기 십상이다.
“아줌마! 차량 지나가는 거 안 보여요”
X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면서 오늘도 보행자는 운전자에게 도로 우선권을 양보한다.
“Are you fucking crazy, bitch?”
미국 유학시절 있었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그늘이라고는 없는 학교 주차장에서 반나절 이상 주차된 파란 쉐블레 문을 여니 밀폐된 내부에 열기가 대단하다. 에어컨을 틀고 창문을 내렸다. 잠시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몰아 도로로 나와 주 도로에 합류하기 위해서 서행 운전 중인데 저 앞에 사람들이 두어 명 서 있다. 횡단보도는 아니었고 도로를 건너려는지 말려는 건지 알 수 없어 저속 운전 상태로 지나가려는데 내 뒤통수에다 대고 욕설을 퍼붓는다. 백미러로 뒤를 살펴보니 아까 서있던 사람들이 가운데 손가락을 쭉 내고는 고함을 지르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순간 당황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얼른 내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그 짧은 시간에 잠깐 생각이 들었는데 서둘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좀 전의 그 사람들은 내 차량이 안 보일 때까지 뒤에서 난리가 나 있다. 예상하겠지만 미국 사회는 보행자 우선인 곳이라 사람이 도로에 서 있으면 횡단보도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정차를 해야 한다. 반대로 운전자는 횡단보도이던 아니던지 간에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이던 빨간색이든 간에 도로에 사람이 보이면 달리다가도 서야 한다.
한 번은 내가 살던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지역축제를 보러 갔을 때 일이다. 평소 조용하던 곳도 축제일이 되니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이면도로로 나와서 주차장을 찾는다고 두리번거리며 운전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지나가고 있어 운전하기가 용이 쓰였다. 그러다가 앞에 지나가던 사람들 사이로 차를 밀어 넣어 지나가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사람이 쓱 돌아보더니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오른손을 본인의 등 뒤로 돌려서는 엄지손가락을 접고 나머지 네 개 손가락을 쭉 펴서 내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욕은 다른 나라 말이라도 금방 알아듣는다고 하는데 제스처도 그런가 보다. 그 쭉 핀 네 손가락으로 나에게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미국에서의 욕을 보면 Fuck, hell, dang처럼 4개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게 많아서 꼭 입으로만이 아닌 손가락으로도 욕을 한다는 사실을
미국 살면서 보행자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확실한 순간은 Jaywalking 즉 무단 횡단할 때였다. 매번 운전 중인 차량이 멈춰주고 순간 눈이 마주치더라도 화는 커녕 오히려 손으로 얼른 건너라는 제스츄어를 한다. 은근 무단횡단의 짜릿함을 즐기게 되는 순간이다. 뉴욕에서는 뉴요커와 관광객을 구별하는 몇 가지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무단횡단(Jaywalking)을 꼽는데 오히려 쭈빗쭈빗하며 무단횡단을 못하는 사람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한 번은 독립기념일을 맞아 맨해튼에 갔을 때 일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로렌과 두 딸내미를 데리고 집 근처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95번 고속도로를 2시간 30분을 달려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우연히 발견한 하루 종일 주차비 75달러만 받는 주차타워에 파킹을 하고 맨해튼 중심지인 타임스퀘어로 향하였는데 안 그래도 볼거리 많은 뉴욕이 독립기념일이라고 거리의 예술가부터 해서 더 활기차다. 아이들도 로렌도 그리고 나도 공부만 하다가 모처럼 맨해튼으로 바람 쐬러 오니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식당은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푸드트럭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다. 독립기념일을 맞아 다른 주에서, 타 도시에서 온 사람들에 전 세계 관광객까지 몰려서 길도 복잡하고 도로 위도 엘로우캡이라 불리는 뉴욕 택시를 비롯해서 온갖 차량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주위도 신경 안 쓰고 바로 무단횡단이다. 초록불에서만 길을 건너던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빨간불에 도로를 건너갈 때도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곤 했는데 초록불로 변해도 횡단보도에 사람이 적으니 이번에는 옐로캡이 달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는 도로를 건너지를 못할 것 같았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던 초록불이던 상관치 않고 우르르 도로를 건넌다. 결국은 우리도 자연스럽게 무단횡단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위 눈치를 보며 건너갔는데 달리는 차량이 횡단보도 앞에서는 우선 멈춤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는 우리들도 서서히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는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뉴욕에서 무단횡단이 자연스러운 것은 블록단위로 설계된 맨해튼의 도로가 대부분 일방통행이라는 것에도 요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뉴요커를 상징하는 무단횡단이 뉴욕시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2019년 11월 뉴욕타임스에서는 “무인 자동차가 본격 도래한 시대에 과연 뉴요커의 무단횡단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기사를 게재하였고 곧 다가올 완전 무인자동차 시대에 맞춰 그에 따른 책임감 있는 사회환경을 갖춰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기 위해 교통신호를 지켜야 하는 참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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