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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Jul 08. 2022

나이 값 못하는 아줌마

지천명에 찾아온 질풍노도의 뒤늦은 사춘기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모르던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무작위로 받아들이며 나의 강점과 단점을 알지 못한 채 이십 대 삼십 대를 지나 오십 대가 지나갈 즈음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나이가 사십을 넘어 중년이 되면 Desperate Wives의 예와 같이 미드 소재로 쓰일 정도로 인생에 대한 많은 회의가 생기는가 보다. 이십 대를 잃어버린 나는 삼십에도, 사십에도 여전히 굴곡진 인생을 버티며 살고 있었고 그렇게 오십이 되다 보니 내 잃어버린 인생 전반전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엄마로서의 짐이 가벼워지니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책꽂이를 정리하는데 문득 쥐어든 책 틈 사이에서 옛날 사진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20대 초반의 나였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월급을 통째로 새엄마에게 주고는 옷 살 돈이 없어 아버지의 오래되고 펑퍼짐한 가죽점퍼에 벨트를 하고는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마주하기 민망했다. 나름 꾸민다고 애썼지만 촌스러웠고 아직 여드름이 여기저기 있었다. 지금이 어릴 적보다 더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민망함이 익숙해질 때 즈음 한동안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무리 애써도 사진을 뚫고 나오는 스무 살의 풋풋함과 싱그러움과 비할바는 아니었다. 억울했다. 뺏겨버린 나의 청춘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이 값 못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중년의 내 나이 즈음의 사람들을 보면(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기에 사람들마다 속한 커뮤니티의 성향은 다를 것이다.) 사는 수준은 중산층 이상 되고 아이들도 특별히 빠지는 경우가 없는 듯하다. 그 중 몇몇은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 자랑하는 낙에 사는 부모들도 있고 아니면 부모가 잘 되어서 그 맛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고 이미 그들의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은 지라 안정적인 삶을 최고의 가치로 보며 콘서트, 오페라 등 우아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젊은 시절 못했던 것에 대한 환상이 있다 보니 클래식도 좋지만 락이나 헤비메탈 같은 공연을 본다던지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다. 옷도 좀 찢어지고 스터드가 박히고 해야 해방된 느낌이다. 물론 품위의 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주말에만 입기는 하지만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큰 내가 중성적인 옷차림에 부츠를 신고 모임에 나가면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좀 여성스럽게 옷을 입고 다니세요’,

“네?, 왜요? 너무 세 보이나요? 그런데 제가 키가 크다 보니 여성스러운 옷 입는 게 편치가 않아요. 나 같지도 않고”

“키 큰 거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 보이쉬한 옷은 여자들에게만 걸 크러쉬 하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남자들은 싫어해요. 무조건 여성스러워야 해요”

“하하, 알았어요. 다음부터 참고할게요”


  근무할 때는 조신하게 입어야 한다. 특히 보수적인 우리 조직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옷을 입고 다니면 개성이 강해서 다루기 힘든 직원으로 몰아간다. 다른 것은 조직문화를 다양하게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컨트롤하기만 힘들어지고 그건 틀린 것이 된다. 답답하다. 이런 내게 숨 쉴 곳이라고는 욜로라고 이름 붙인 오랜 친구들이다. 우리들은 서로 너무 잘 맞아서 여행도 가고 맛 집과 공연을 보러 다니곤 하는데 그들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공연이나 모임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거 젊었을 때 해야 하는 거란다. 그래서 Jazz나 토스트 마스터도 혼자 했고 락이나 헤비메탈 같은 공연은 혼자 가기 그래서 늘 맘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미와 미미 패밀리를 만났다.


  인터내셔널 한 미미랜드 패밀리는 모두 6명이다. 어디든 무엇이든 우리는 함께 했다. 그런 우리를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완전 인터내셔널 하지. 제리와 코코는 필리핀계 미국인이고 수지는 인도계 미국인, 미첼은 일본계 미국인, 그리고 미미는 뉴요커이고 라나를 한국인이야”

이라고 말하며 서로를 쳐다보며 다 함께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다. 그들은 나보다 5살 이상 많았고 가장 나이 많은 Indian-American인 수지는 10살이 많았다. 50~60대였던 우리는 한국의 20~30대보다 재미있었다. 항상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언제나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았다. 우리는 항상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놀러 다녔고 계획이 없을 때면 우리들의 아지트인 미미 아파트에서 주말마다 모여 밤이 늦도록 얘기하고 음악과 함께 저마다 가져온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십 대 시절로 돌아간 듯 비디오 게임과 우노와 같은 카드게임을 하였다.


  우리 멤버들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다. 수지는 헬리콥터 맘이었다. 보살핌이 지나쳐 우리 모두를 과잉보호하고 참견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게 되면 차량 렌털부터 숙소 예약까지, 삼시 세 끼는 무엇을 준비하고 매일 액티버티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상세히 조사해서 각자의 준비사항을 꼼꼼히 알려주었다. 그러면 우리는 “Yes, mom”하고 고민 없이 따라 하였다. 오랜 결혼생활에도 아이가 없던 그녀는 우리를 그렇게 챙기면서 기뻐했고 우리도 그녀 덕에 여행을 가던, 미미 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던 즐거웠고 고마웠다. 다른 멤버인 코코와 제리는 엔터테이너이다. 음악과 춤을 항상 즐기는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모임은 그렇게 웃음이 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뉴요커인 미미는 설계자이자 우리들의 리더이다. 항상 무엇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커넥터이다. 한국문화와 그들의 문화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우리에게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수지와 미첼은 체류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기 반년 전부터 우리 멤버들의 맘은 바빠졌다. 이별여행을 한다며 통영, 부산, 칠천도, 경주 등 국내 여러 곳과 함께 우리들의 첫 해외여행지인 도쿄에서부터 2020년 1월, 마지막이 되었던 보라카이까지 함께 하였다. 모두가 아쉬움을 달래던 그 해 2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중국발 코로나가 한국을 덮쳤고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로벌 팬데믹 사태로 인해 수지와 미첼의 미국 복귀가 6개월 연기되었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랠 시간을 더 갖게 되었다.


  코코와 제리까지 돌아간 지금, 내 곁에는 미미만 남았다. 진작에 돌아갔어야 할 미미도 본 국 행정처리가 늦어지면서 6개월 연장근무 중이다. 그녀는 지금 내 곁에서 나의 도전기를 응원하고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자존심만 커지고 상처받기 두려워져서 쉽게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렵다.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 지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나를 내려놓지를 못한다. 외골수가 될수록 외로울수록 필요한 존재가 친구인데 우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는지 한때 죽고 못살았던 사이었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며 지날 수도 있지만 고독을 극복하고 재미있고 행복한 노력을 위해서 좋은 친구를 가까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75년(1938년~2013년) 간 하버드 대학생에서 보스턴 빈민촌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724명의 대상자의 일생을 연구 관찰한 보고서인 ‘행복한 삶의 비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질이 높은 사람들은 가족, 친구,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십 년간 이어지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런 좋은 관계는 그들의 두뇌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강의에서 한 청중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다. 친구 때문에 괴롭다고 그래서 헤어지려고 하나고. 그랬더니 스님 하시는 말씀이 그건 친구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친구라면 상대방의 하나하나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서운해하고 마음 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돌아본다.


  내가 친구하고 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친구는 있는 건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고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지금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맘대로 의지대로 되는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자신이 없다. 덩치에 비해 마음 약한 나에게 지금 필요한  친구인데 점점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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