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은 사랑
글을 쓰지 않아도 나는 괜찮았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 그때 글을 써야 한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글을 쓸 자격조차 없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적이 없었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고, ‘편해서’ 이어갔을 뿐이다.
사랑조차도 그랬다. 불같이 타오르지 않았지만, 어느새 곁에 있었다.
사람들은 첫사랑을 입에 올릴 때마다 눈빛이 반짝인다.
첫사랑이 마치 인생의 서사 중 가장 눈부신 장면인 양 이야기한다.
나는 그만한 장면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는다.
초등학교 3학년, 시골 사진관집 딸아이가 떠오른다.
명절, 우리 집에 음식을 가져온 그 아이를 어두운 밤에 집까지 바래다주게 되었다.
언덕길을 함께 걸었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작고 따뜻했고, 내 심장은 쿵쿵 뛰었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시골을 떠올릴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녀.
반장이었던 나와 함께 손발을 맞췄던 부반장 아이.
서울로 올라온 후, 고등학생이 된 그녀가 교회를 다니다 말없이 우리 집을 찾았다.
몇 번 더 만났지만, 우린 다시 가까워지지 않았다.
첫사랑이라기보단, 소중했던 ‘첫 친구’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때 담임이었던 여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날, 어머니는 선생님께 음식을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그 사진관집 딸아이가 몸이 아파 먼 친척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가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처음 느껴본’ 이성에 대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지금의 아내다.
대학생 시절, 편지를 수도 없이 주고받았고
나는 매번 답답하고 서툰 말들로 구애했다.
아내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을 뿐이다.
거절하지도, 확신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이 좋았다.
보지 않으면 보고 싶었고,
보면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결혼을 결심했지만, 문제는 직장이 없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면접을 다녔고,
취직하자마자 서둘러 결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여유를 두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늘 완벽할 수 없으니 그마저도 우리의 이야기다.
나는 뜨거운 정열로 사랑한 사람은 아니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쓰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조용히,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 온 것이 있다.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었고, 나의 글쓰기도 그런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첫사랑이 꼭 타오르는 불꽃이어야 할까?
어쩌면, 내 곁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인생의 진짜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ps ; 활활 타는 모닥불 보다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이 은근하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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