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랜덤초이 Jun 27. 2023

알뜰한 게 비지떡

주말 저녁 식사를 차리고 치우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가족들과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메뉴 선택에 있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 웬일로 흔쾌히 중국집 메뉴로 합의하였고,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배달플랫폼을 이용해 식사를 주문했다.


탕수육 大, 자장면 3, 짬뽕 1, 간짜장 1 이렇게 요리 하나와 식사 다섯 개를 주문하면서  다섯 식구가 중국집에서 한 끼 식사를 배달시켜 먹으려 해도 이제는 십만 원 가까운 돈이 드는구나 싶은 생각에 물가 인상을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요즘 음식 배달을 시킬 때 간과할 수 없는 게. 또 배달비다.


배달플랫폼이 없던 시절엔 배달비란 걸 따로 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식당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손님이 좌석을 차지하지 않고 주문을 하는 셈이니 배달비는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포장이나 배달을 주문하면 군만두나 음료수를 서비스로 챙겨주는 게 상례(常例)였는데 이제는 어느새 서비스는 고사하고 배달비 부담이 피부에 와닿고 있다.

적게는 3천 원 정도에서 만원 가까이 지불하기도 하는 배달비는 1~2인분의 음식을 시킬 때면 부담되는 수준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람들이 점점 배달비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자 요즘 배달플랫폼들은 그런 불만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마케팅에 활용 중이다.

어딘가는 ‘배달비 무료’를 내걸고 구독서비스를 출시해 광고 중이고, 다른 어딘가는 ‘알뜰배달’, ‘세이브배달’이란 옵션을 만들어 배달비를 차등화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알뜰배달은 유사 동선의 배달을 묶어서 최적 이동경로로 들러가며 배달하는 방식이라고 하며 그래서 음식점 업주와 고객의 수수료 부담을 낮춘 옵션이라고 설명한다.


평소 이용하던 방식과 다른 배달옵션이 생긴 걸 보고 나는 몇 천 원 아껴보겠다고 ‘알뜰배달’ 옵션을 선택해 봤다.  어차피 애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니 배달이 조금 늦어도 상관없단 생각에 몇몇 배달장소를 묶어서 배달하는 ‘알뜰배달’을 선택한 게 바로 그날 나의 패착이었다.


배달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는 주문 진행상황과 배달동선을 보니 ‘알뜰배달’ 시스템의 문제가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우선은 묶음 배달의 배정 때문인지 평소보다 배달 출발이 늦게 시작된다고 생각되었다. 당연할 것이 음식 나오는 순서가 있는데 몇 집에 가야 할 배달 음식이 모이기를 기다리니 출발이 늦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막상 배달이 시작되자 지도에 표시되는 라이더의 현재 위치가 우리 집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 보는 것도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오래 두면 불게 되는 면요리를 싣고 집에서 멀어져 가는 라이더의 위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기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다음으로 경험한 문제점은 일종의 사고 같은 것이었다.


배달받은 음식 중에 짜장 소스가 빠져있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자장면에 달랑 면만 들어있는 걸 보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 사후처리를 하는 것이 영 곤욕이었던 것이다.


앱을 뒤져 업소의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일단 통화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배달플랫폼의 고객센터를 이용해 채팅 상담을 하다 보니 조급한 마음과 상관없이 친절하지만 상투적인 응대에 짜증이 났고 문제 해결도 되기 전에 상담에 만족했는지를 묻는 시스템으로 짜증은 배가(倍加) 되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자장 소스뿐 아니라 면도 다시 보내준다고 혜택처럼 말했지만, 그럼 한 시간이 지나 불어버린 면에다가 소스만 가져다 주려했던 것인지 오히려 의문이었다.

다시 자장면의 배달이 시작되고도 또 다른 배달장소에 먼저 배달하려 우리 집에서 멀어져 가는 라이더의 위치를 보고 있자니 황당과 짜증은 화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말 배달 음식으로 편리하게 식사하려던 생각은 두 시간 넘게 이어진 기다림과 당황스러운 경험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서비스 기획과 관련된 업무를 짧게나마 경험한 사람으로서 ‘알뜰배달’의 문제는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존재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집배달’에 맞춰 최적화한 앱의 기능과 사용법을 그대로 유지하며, ‘알뜰배달’이라는 콘셉트를 수용하려다 보니 이전에 사용 편의를 위해 기획된 장치들이 오히려 불편을 느끼는 요소로 동작되는 것이다.


빠른 배달을 눈에 보여주던 장치들이 느리고 비효율적인 배달을 고자질하는 역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알뜰배달’을 시키셨으니 ‘한집배달’보다 불편한 건 당연히 감수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아무리 감수하려 해도 그렇지 서비스가 제공해야 하는 본질적인 고객가치를 훼손하면서 알뜰함을 고맙게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알뜰하려다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만 들고 말이다.

 

아마도 바뀐 배달옵션의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https://www.etnews.com/20230626000143?mc=ns_003_00001


이쯤 되면 회사도 충분히 문제를 인지할 테니 모쪼록 지금까지의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분발을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이너로 살 자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