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진 사람보다 오히려 무능력해 보이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관료화된 조직사회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인정받고 있다.
1989년부터 연재된 '딜버트'는 샐러리맨 딜버트의 직장생활 에피소드를 그린 만화이다.
작가인 스콧 애덤스는 독자들이 보내준 직장생활 사례를 참조하여 내용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워낙 인기를 얻은 덕에 단행본의 책이 나오고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었다.
작가는 만화의 내용에서 특정한 이론을 정리해 냈고 그게 바로 서두의 내용, 즉 딜버트의 법칙이다.
나조차도 직장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법칙이 과연 사실일까 의문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의 조직생활을 겪고 돌이켜보니 이는 상당히 일리 있는 얘기라고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었다.
만화의 에피소드 중 가장 극명하게 공감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평범한 부하직원 딜버트는 고위 임원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래서 그의 직속 상사에게 묻는다.
"고위 임원에게 그런 판단의 위험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러자 그의 직속 상사가 답을 한다,
"그래 어차피 바꾸지 않을 의사결정을 반박해서 우리 커리어를 끝낼까? (비꼬는 투로)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
상식적으로 보자면 딜버트의 합리적 의심이 전달될 수 있어야 회사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겠지만
그의 상사는 고위 임원의 의사결정에 부정적 의견을 내는 것이 곧 해고 같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연하게도 나 역시 이런 경우와 놀랍도록 유사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
CEO의 위험한 의사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나는 나의 직속상사에게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피하기 위해 확인된 사실들을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다만 나의 직속상사는 딜버트의 상사만큼 현명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의사결정의 위험성에 대한 보고를 말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딜버트의 상사보다 더 현명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보고도 나에게 맡기고 그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 맡겼으니...
아무튼 그 상황에서 CEO는 위험한 선택을 했고 회사는 치명적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
그런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본 나는 딜버트의 법칙을 확실히 몸소 체감하고 열렬히 신봉하게 되었다.
상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리스크는 굳이 공론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조직에 위험한 의사결정이라도 어쩌면 CEO에겐 필요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알아도 모른 척 뒷짐을 지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 있었겠다.
이 같은 상황은 사실 직접 겪어본 사람보다도 주변에서 관찰한 사람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전한다.
'나는 저 사람처럼 입바른 말은 하지 말아야지'
'나도 괜히 나서서 저런 꼴을 당하지는 말아야지'
그런 학습의 결과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조직의 고위직을 장악하고 절대다수가 되어버리면 어떤 모습이 될까?
뭐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 결과는 가히 짐작하는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방관자들로만 가득한 조직이 되는 것이다.
만약 딜버트의 법칙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TV뉴스 속에서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대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모습을 참고하면 된다.
그들이 그렇게 몰지각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못나서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못난 모습을 보여야만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되는 잘 배운 사람들이 무식한 소리를 해댄다면
그건 그들의 위에 훨씬 못난 우두머리가 있다고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런 모습은 우리가 충분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스스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부정적 선발(negative selection)만 고집하는 극악한 권력자.
그 끝이 어찌 되는지는 이제 머지않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중들이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는 순간
분명 최악의 권력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