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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미동도 없이 침착하던 나의 아랍인 친구들은 빠른 결정을 내렸다.

by 도래솔 Dec 12. 2023

국경과 체크포인트가 닫혔다. 

눈앞에 일어나는 일이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요르단 국경과 여리고 검문소가 차례로 닫혔고, 우리를 데리러 오기 위해 달려오던 말락의 삼촌은 체크포인트에서 우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애 첫 전쟁경험에(그것도 일어나자마자 겪는) 마음이 붕 떠버린 나와 달리, 미동도 없이 침착하던 나의 아랍인 친구들은 빠른 결정을 내렸다. 빠르게 짐을 싸고 이곳을 떠나기로.


친구 부부의 차에 나와 말락, 이안이가 함께 타고 이곳을 함께 빠져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오지 않는 펜션 주인이었다. 이곳은 독특하게 주인에게 직접 열쇠를 전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분초를 다퉈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부부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남편은 주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고 아내는 그냥 열쇠를 아무 곳에나 두고 가자고 실랑이가 오고 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다투던 친구 부부의 소리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졌다. 


빨리 전화해 봐! 했어! 오고 있다잖아! 


급한 마음에 우리는 우선 모두 차에 올라탔다. 남편은 오고 있다는 주인의 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펜션 대문 앞 도로로 걸어 나갔다. 펜션 밖은 온통 넓은 흙빛 도로들로 빼곡했고, 드문드문 보이는 차들은 우리가 있는 곳의 반대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아내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오른쪽 먼 도로에서 검은 차 한 대가 우릴 향해 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차였다. 열쇠를 던지듯 전달하며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우리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아닌 곳으로 달리는 차

멀지 않은 곳에서 탱크가 보였고, 도로는 이미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다. 군인들이 보였다. 문을 열고 친구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한 명은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고 빨리 나가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군인은 총구를 위로 겨누고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탱크가 보였고, 도로는 이미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다. 바리케이드 옆으로 난 흙 길로 몇몇 차들이 줄지어 향하고 있었다. 우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 차를 따라 달렸다. 그곳은 길이 아니었다. 아무 좌표도 없는 사막 길을 따라 달렸다. 


운전대에는 말락의 친구가 앉아있었고, 조수석엔 그녀의 남편이 아기 바구니에 들어있는 1살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 뒷자리엔 나와 말락, 이안이와 친구의 아들이 타고 있었다. 좁은 자리 때문에 말락은 이안이를 안고 앉아있었는데 자세가 불편했는지 이안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평소 때라면 아무리 심한 장난을 치거나 울어도 오냐오냐 달래 주던 말락은 지금만큼은 달랐다. 칼라스, 칼라스 이안! 낯선 엄마의 호통에 이안이는 당황한 듯 잠시 울음을 멈췄다가 이내 더 크게 울기 시작했고, 소용이 없다는 사실과 미안한 마음에 말락은 다시 이안이를 달래줬다. 차 안은 이안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정신없는 차 안 풍경

그와 정반대로 말락 친구의 첫째 아들은 정말로 조용했다. 3살 된 아이가 이렇게 울지 않을 수 있나? 어디가 아픈가 싶을 정도로 내내 울지 않았다. 놀랄 만큼 차분했다. 그저 수영장에서 가지고 놀려고 했던 비치볼을 손에 꼭 앉은 체로, 멍하니 앉아서 간간히 기침을 했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기침이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더 심해진 듯해 보였다. 대차게 우는 이안이보다 조용히 있는 친구의 아이가 더 신경 쓰여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쳐다보는 아이를 바라봤다. 공을 가지고 놀다가 발이 닿지 않는 바닥으로 떨어지자 아이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주워 주고 싶었지만 가운데 앉아있는 나의 상황은 조금 난감했다. 내 앞으로는 커다란 짐가방이 무릎을 짓누르고 있었고 위로는 아이스박스가 시야를 가리고 가슴팍에는 내 백팩을 끌어안고 있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정말 커다란 플라밍고 튜브가 내 머리를 둘러싼 채로 천장에 닿아 찌그러진 채 끼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불행하게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이의 공을 주워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긴박했던 도로 위

어느새 우리가 탄 차는 휑한 사막 위 도로 한 복판에 놓여있었고 뒤에 다른 차가 멈춰 섰다. 말락 삼촌의 차였다. 얄라! 빨리 내려! 말락은 나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버스를 놓치거나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도, 그저 킥킥대거나 혀를 차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기를 잔뜩 담아왔던 아이스박스와 튜브를 챙기느라 뭉그적거리는 나에게 말락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시 고기를 챙기느라 무엇이 중요한지 까먹은 나는 짐을 빠르게 챙겨 삼촌의 차에 올라탔다. 옆에 앉았던 아이의 공을 주워 주거나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로.


차에 타자, 말락이 나에게 말했다. 방금 진차 큰일 날 뻔했어. 옆에! 옆에 봐! 쿤인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옆을 보자 그제야 총을 들고 경계태세를 하고 있는 초소와 군인들이 보였다. 


우리를 데리러 와준 삼촌

삼촌은 말락의 엄마이자 자신의 누나가 우리를 걱정하니, 사진을 찍어 보내자며,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셀카를 찍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났다. 괜찮은 상황이 아닌데 괜찮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자는 말이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멈추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말락의 삼촌은 말락이 아주 어렸을 때 동네에서 힘이 제일 센 사람이었다고 한다. 누군가 말락에게 잘못한 날에는 삼촌이 그를 찾아갔고, 빠른 시일 내에 말락 집으로 찾아와 사과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확실히 청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긴박한 상황 속 다른 누군가를 걱정해 전쟁 셀피를 찍어 보내고, 아주 위험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러 올만큼의 강인함은 여전히 갖고 계셨다.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반대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다가 핸드폰을 하면서, 아주 빠르게 달리는 삼촌의 모습사이로 어떤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촌이 담배를 몇 개비나 피웠는지 잘 모른다. 분명 연달아 3개비는 넘게 피우셨을 거다. 


미사일,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집

헤이! 룩! 삼촌이 가리키는 방향, 창문너머로 미사일 구름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사일이 격추된 곳에 동그란 구름이 보였다. 삼촌은 어떤 것이 미사일 구름이고, 어떤 것이 그냥 구름인지 설명해 줬고, 이내 나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기다랗고 가파른 고속도로를 넘자, 익숙한 도시 풍경이 보였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다시 도착했다. 갑자기 고요해진 로터리를 지나, 감람산 위 말락의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우리를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비스밀라 비스밀라, 우리를 본 엄마가 조용히 읇조리며 꼭 안아 주셨다. 테라스에 나가니 저 멀리서 미사일이 떨어졌다. 3번. 엄마가 말했다. “여기 있으면 이제 안전하단다. 이제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따뜻한 햇살을 쬐고 들어와서 홍차를 좀 마시렴”

이제 나는 안전했다. 집이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었다. 눈을 뜨고, 소식을 듣고 빠르게 차를 타고 도망친, 이 모든 일이 세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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