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선물 1(법률)

by 그럼에도

일 년간 집주인과 분쟁을 겪으면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그건 바로 '세상 물정 중에서도 법률‘이었다. 사회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나는 여러 면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임을 이번 일로 인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임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투어를 하는 것도 몰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해본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법률이라는 단어에는 세상 무지했다.


삼 년 전 변호사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부메랑이 되어서 이렇게 고통받는지도 모른다.


"저는 법 없이도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를 황당함을 넘어서 어이상실한 모습으로 바라봤던 소개팅남.


그렇게 그 소개팅은 끝나버렸다. 그리고 지방 발령 외에는 별다른 변화 없이 살던 나는 작년부터 '임대차계약, 누수 문제 두 건'으로 골치를 앓았다.


누수는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빠르게 대응하고 해결했다. 하지만 임대차계약은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법률구조공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집주인의 협박 문자를 받고, 잠을 못 이루던 새벽에 두 번째'법률구조공단' 예약을 했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법률구조공단도 집주인의 만행으로 고통받던 작년 10월, 우연히 발견한 이름이었다.(책에서 읽었다)


두 기관은 비슷한 듯, 매우 달랐다. 특히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경우는 그랬다. 조정은 할 수 있지만 특별한 권한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경우를 보니 괜히 '집주인 성질 건드리지 말라'던 말씀을 웃음 띤 얼굴로 말하던 담당자는 특히 그랬다.


현실적인 조언 같기도 하고,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내 마음은 분노와 우울이 극에 차 있었고 어떤 이성적인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순응했다. 권한도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집주인이 아니었다.


조정위원회의 서류 양식을 집에 와서 박박 찢으면서 생각했다. 이래서 사무실에 사람이 없었던 걸까?


다시 법률구조공단에도 접수했다. 물론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여기서도 뾰족한 해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열한 달이 흘렀다.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왔다.


집주인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작년 11월이 지나 12월부터 지금까지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연락도 드물었다. 월세를 더 올리려던 집주인의 계획도 어긋났고, 설상가상으로 주변에 신축아파트가 쏟아졌다.


집주인은 갑자기 우리 다 같이 협력해서 이 일을 풀어보자는 말도 안 되는 전화가 지난주에 왔었다. 집주인의 가스라이팅에 속지 않는 날 보고 집주인은 도리어 막말 문자를 보냈다.


임대차 문제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법률구조공단'이었다. 이번엔 경기도의 한 지부에 들어섰다. 나는 상담시간이 한참 지나서 도착한 불량한 방문객이었다. 그럼에도 웃으면서 반겨주셨다.


부산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이미 늦은 만큼 본론만 여쭤보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에 있는 CCTV와 남은 짐을 언제 빼야 하는지,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주면 언제 임차권등기를 신청해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이번에는 추석 연휴와 임시공휴일, 개천절로 인해서 나의 법적 행동은 빨라도 10월 4일에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항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임차권등기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짐도, CCTV도 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담당자님은 공단 특성상 순환근무제로 인하여 나처럼 지방근무를 한 경험도, 남은 계약기간으로 월세를 매달 납부한 경험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더 잘 이해한다'는 말씀에 그동안의 아픔이 솜사탕처럼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분명 법적 조언이 필요해서 간 건데, 그분의 따뜻한 한 마디에 열한 달의 아픔이 가벼워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렇게 나는 오늘 심리 치료를 받고 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날아다녔다.


다음 주는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와 더불어 보증금 반환을 요하는 내용 증명을 한 장 보낼 것이다.(필수는 아니지만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고 싶었음)


다음 주, 집주인의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을 시에는 부산행 기차를 타고 서류 절차를 개시할 것이다.


처음 만난 누군가의 한 마디가 이렇게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주변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공감과 위로여서인지, 체험자의 찐 후기여서인지 오늘 내 마음은 구름 위를 걸어 다녔다.


집주인이 알려준 선물 중 하나는 '법률구조공단의 존재, 그리고 방문'이었다. 그렇게 임대인 때문인지, 덕분인지 법적 도움과 절차를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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