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분쟁을 하면서 많이 만난 사람들은 부동산 소장님이었다.
나는 평소에 부동산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지금 집에도 워낙 오래 살고 있었고, 몇 번의 임대차계약은 해본 적은 있지만 서류에 사인하라는 말 외에는 부동산 소장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작년 10월, 열 군데 부동산에 집을 내놓으려고 여기저기 들어가 보았다. 집주인이 잠수를 타서 연락이 안 돼서 근처 A부동산에 갔고 집주인과 친한 B부동산에 하소연하러도 갔었다. 또한 주변 시세를 알러 C부동산 등등에 갔다가 집주인의 엄청난 스펙(?)을 알게 되었다.
서울말(?)을 쓰는 외지인을 경계하는 부산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딱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도와주지는 않는 외계인 같았다. 경상도 사람들 중에서도 부산사람들은 대화가 많고, 애교 섞인 단어와 리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을 계약할 때와 달리 내놓고 보니 좀 달랐다.
집주인의 이력이 화려해서인지 집주인 이름만 듣고도 찡그리는 소장님, 나라면 거기에 계약 안 한다는 사람, 집은 가까운 부동산에 내놓는 거라고 다른 부동산으로 등 떠미는 소장님, 앞뒤가 안 맞지만 이런저런 말로 우기는 소장님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 나는 몸으로 '세상물정의 부동산 사람들'을 보고 배우는 중이었다. 부동산에 몇 번 오고 갔더니, 사람들을 대하는 부동산 소장님들의 언변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부동산은 다들 비슷해 보였는데도, 영업 수완 차이가 컸다. 거기다 이번 집주인처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에게 직설을 날리는 소장님까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했다.
만약에 내가 부산에 집이 있다면 아마도 'OOO부동산'에 집 관리를 맡겼을 것이다. 수완도 좋지만 말과 행동이 솔직하고 직선적이었다.
집주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OOO부동산'소장님의 잔소리는 힘들어하면서도 돈 불리는 일은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괜찮은 부동산의 조언을 참고한 점이 동네 유지가 된 비결이 아니었을까?
평소 부동산에 갈 일도 없고, 관심도 적었는데, 이번 일로 부동산에, 정확히는 부동산 소장님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계속 이런저런 말들로 거짓말하는 부동산 소장님도 있었다. 올해 그나마 손님을 데려오는 거의 유일한 부동산이기에 '심한 말'은 속으로 삭이면서 참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말도 꿀꺽 참아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부동산에 공통점은 있었다. 임차인은 곧 떠날 사람이고 일회성 거래다. 임대인인 집주인은 지속적인 거래를 일으키는 VIP 고객이었다. 내 사정이 딱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럼에도 뒤돌아서서는 집주인 편에서 서서 행동했다.
집 보러 손님이 온 것처럼 바뀐 비밀번호를 알아냈던 부동산도, 알고 보니 집주인이 부동산에 시켜서 행동한 연극이었다.
세입자에게 따뜻한 소장님도 많이 계시겠지만 나는 냉혹한 초원에 던져진 '가젤' 같았다. 맹수무리 같았던 부동산 사람들과 집주인 사이에서 나는 무던히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가젤과 맹수 무리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끝은 어떻게 될까?
법률구조공단 담당자님은 시간이 걸려도 받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보다 조금 더 마음의 맷집이 강해졌으니까.
그럼에도 해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