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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1일 다뉴브강 유람선 야경

[DAY 14] 8월 10일 (토)

by 채숙경

오늘은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나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난다. 빈 중앙역이 가까워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다. 엄청 넓은 빈 중앙역은 아침부터 유럽 전역으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우리의 열차는 오늘도 연착이다. 심지어 플랫폼도 변경되었다. 다행히 완전히 다른 플랫폼이 아니라 같은 플랫폼 내 탑승 위치만 변경되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는 2등석이라 통로가 좁아서 우리의 캐리어를 열차 선반에 올려야 했다. 그동안 여러 도시에서 산 기념품과 선물로 가득 찬 캐리어는 무거웠고 선반은 우리 키에 비해 너무 높아 우리는 힘을 합해 올렸다. 어떤 키 큰 서양인 몇 명이 짐 올리는 걸 도와주었다. 하지만 저쪽에 앉은 젊은 남자들은 우리가 짐을 올리느라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비웃듯이) 웃었다고 윤지가 일러 주었다. 인종차별주의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치기 하는 것이 문제다. 인종 간, 남녀 간, 세대 간 갈라치기함으로써 자신이 얻게 되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를 활용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하면 안 된다.(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


한참을 달리던 열차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선로변경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참을 있다 다시 출발하였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2시간 30여 분이 지난 후 부다페스트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탈 때 선반에 올렸던 캐리어를 서로 도와가며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니 처음 탈 때 3량 정도로 짧았던 기차는 어느새 10량 이상 엄청 길어져 있었다. 아까 멈춰 섰을 때 다른 열차를 연결했나 보다. 빈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리다 다른 플랫폼에 있는 두 기차를 서로 연결하는 것을 보았던 터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인지 몸이 찌푸둥하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느낌이다. 빨리 호텔 가서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부다페스트는 엄청 더웠다. 35도가 넘는 그야말로 한여름 뙤약볕이다. 네 명이니 호텔까지 택시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볼트나 그랩 같은 앱으로 미리 택시를 부르면 요금 흥정할 일이 없었을 텐데, 그냥 역 앞에 있는 택시를 잡았다. 라 프리마 패션 호텔에 간다 하니 25유로를 불렀다. 내가 15유로를 부르니 안 간다고 거절하였다.

"Twenty Euro"

"Okay"


택시 기사는 영어도 능숙하게 하고 이런저런 말도 붙여 주었다. 너무 덥다 하니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 주었다. 거리의 택시들이 모두 노란색이라 헝가리 택시는 모두 노란색인지 물었더니 부다페스트는 노란색인데, 다른 도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해 주었다. 우리의 호텔은 위치가 좋아 관광하기에도 쇼핑하기에도 좋을 거라는 얘기도 해 주었다. 그러고는 호텔 입구에서 친절하게 우리 짐도 내려 주었다.

"고마워요.~"


호텔 체크인을 하고 짐을 올려놓은 후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근처 예쁜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도 종업원에게 단체 사진을 찍어 달라 하였다. 무뚝뚝하다. 조금 전 호텔 직원도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택시 기사 빼고 대체로 무뚝뚝하다. 내가 느낀 헝가리의 첫인상이다.

밥을 먹고 싶어 주문한 크림호박리조또는 생쌀을 씹는 느낌이라 (최대한 노력했지만) 다 먹지 못했다. 호박의 양도 너무 적어 약간 실망했다. 다른 음식들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았다.


오늘 계획한 일정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영웅광장으로 가서 바이드 후냐드 성을 보고 언드라시 거리로 와서 헝가리 국립 오페라 극장과 성 이슈트반 성당을 본 후 저녁에는 부다구역의 부다왕궁,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덥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었나 보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 오후 일정을 시작하자 의견을 모았다.

호텔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우니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었다. 컨디션이 확 안 좋아지면서 몸살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지현언니가 가져온 갈근탕을 주었다. 따뜻하게 데운 갈근탕을 먹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한참 자고 일어나니 몸이 좀 개운한 느낌이다. 다시 일어나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진언니는 저녁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다 하여 지현언니와 나는 근처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를 좀 사 오기로 하였다. 그제야 헝가리 시내 구경을 하였다. 유럽식 건물이 즐비한데, 빈에 있다 와서 그런지 왠지 시골느낌이다.

마트에서 빵과 과일, 샐러드를 샀다. 우리 딸에게 줄 헝가리 과자도 샀다. 헝가리 오면 꼭 사야 한다는 특산물 토카이 와인도 있어 아들에게 줄 선물로 한 병 구입하였다.



계획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밤에 다뉴브강 유람선 타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빈에 있을 때 다뉴브강 유람선 투어를 예약하였다. 수많은 유람선이 있고 출발하는 선착장도 다양하였다. 그중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에르제베트 다리 아래 있는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예약하였다. 원래는 마지막날 타고 싶었으나 예약불가하여 오늘 저녁으로 예약하였다.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다뉴브강이 있었다. 해 질 녘 강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하얀색의 에르제베트 다리를 중심으로 저 멀리 보이는 세체니 다리와 반대쪽 자유의 다리까지 부다페스트 온 것이 실감 나는 장면이다.

유람선 선착장에 가니 벌써 줄이 길다. 우리가 예약한 티켓은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이 바로 입장하여 안쪽 실내에 앉아서 대기할 수 있다. 유람선 내에서는 2층 테이블에 앉아 갈 수 있으며 원하는 칵테일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드디어 승선,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칵테일을 주문하고 출발. 2019년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여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배가 출발하는데도 구명조끼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응급상황시 대피요령 등을 안내하지도 않았다. 다뉴브 강에 떠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다른 유람선도 마찬가지인지 알 수 없다. 이왕 탔으니 걱정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에르제베트 다리에서 출발하여 세체니 다리를 지나 국회의사당, 머르기트 섬으로 갔다 돌아와 자유의 다리까지 내려갔다 다시 에르제베트 다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유람선을 타고 올라가면서 왼쪽 부다 구역, 오른쪽 페스트 구역을 보느라 눈과 손이 바쁘다. 저 멀리 부다 지구의 부다왕궁,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는 멀리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부다페스트 야경의 하이라이트, 국회의사당 야경은 과연 장관이다. 부다페스트가 시골스럽다는 느낌은 국회의사당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모두들 사진 찍기 바쁘다. 무료 음료 칵테일을 마시며 한 바퀴 다 돌아보니 부다페스트 관광 다 한 것 같았다.

부다페스트는 야경이다.


에르제베트 다리
부다 왕궁
세체니 다리
부다왕궁(왼)과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오)
세체니 다리(왼)와 자유의 다리(오)
헝가리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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