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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Feb 14. 2024

'운이 좋았지'에서 '사계'가 되기까지

내가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

 그럴 때가 있다. '어쩜 나의 마음과 이렇게 같을까'싶은 글이나 노래를 만날 때가. 그리고 이런 감정을 나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위로. 얼마 전 듣게 된 가수 권진아의 노래 '운이 좋았지'의 가사가 딱 그런 글이었다.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마지막이었고 가장 힘들었던 이별이 작년 이맘때였다. 슬슬 봄바람이 불 때쯤. 그때 내 메모장을 채운 글들을 보면 가관이다. '앞으로는 아무와도 달콤한 공기를 마실 수 없을 것 같다.' 날 믿지 못하겠다, 이젠. 원래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류의 절망 가득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정말 마가 씌었는지, 삼재의 영향인지 그때는 그랬다. 매일 하던 연락이 이젠 향할 곳이 없다는 절망, 사라져 버린 함께의 미래. 그 상실감이 주는 충격이 너무 무거워 눈물만 났었다. 겨우 버텨 살기 위해 숨을 짜내 쉬어도 겨우 지난 시간은 1초. 1초도 이렇게 힘든데 1분을, 1시간을, 하루를,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지. 이제 아무 재미도 행복도 없을 세상을 나는 왜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친 인연 모두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으니


 하지만 '운이 좋았지'의 가사처럼 마지막 연애 이후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언제 행복한지 살필 수 있게 된 것, 나를 위하고 사랑하기 위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내가 싫어도 상대방을 위해 맞추고,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날 좋은 날, 포근한 햇살 냄새를 맡으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상대방은 목적 없이 걷는 것이 싫다며 억지로 같이 갈 곳을 만들었다.


 벚꽃이 뒤덮인 하늘을 보고 걷고 싶어 지만, 상대방은 비염이 심해 꽃가루가 날리던 날은 외출을 꺼려해 나도 집 앞 벚꽃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지금 남을 위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쓰다 보니 두배로 더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날이 풀리고 봄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더 그렇다. 찬 바람에 섞여 솜냄새 비슷한 봄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햇빛은 따뜻해지니 길거리만 걸어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쉬는 날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는 데이트가 아닌 오랜 시간 동안 헬스장에서 스트레칭부터 근력운동, 유산소까지 마치고 카페에 들러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필사도 했다.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어 해외여행 한 번 가지 않았다는, 그래서 신혼여행도 제주도나 남해로 가자는 말을 하던 그놈에게 맞장구치며 해외여행 따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속이기보다, 당장 이번주 태국으로 떠나는 상황이 좋다.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나는 요즘 자생각한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연애 과정이 행복했냐 물으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힘든 연애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나에게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연애를 놓지 못했던 이유는, 모든 미디어에서 말하는, 사회가 옳다고 말하는 '커플'의 형태가 좋아서였다.


 결혼에 대해서 묻는 어른들, 애인 유무에 대해 묻는 주변 사람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말하는 미디어들. 그들에게 나도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상황이 좋았다. 정작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매일 울고 실망했으면서.


 연애는 내 결핍을 채우는 일이었다. 불안한 미래를 맡기고,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하는 현재를 투정 부리는 일.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닌, 미디어가 말하는 연애를 사랑한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진정한 사랑에 관심이 생겼다. 다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난 아직 찾지 못했다. 가족부터 시작해 주변 모든 커플들까지. 다들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채우려 남을 인생에 끌어들여 의지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칭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외로운 것이 싫어서, 혼자인 자신의 미래가 두려워, 사회에 당당하고 싶어 사랑을 가장한 연애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이제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강아지를 위하던 마음이었고, 엄마가 나를 위하던 마음이었다. 강아지가 아팠을 때 나는 병원비가  얼마가 나오든 강아지를 살리고 싶어 모든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자다가도 문 열어달라며 문을 긁으면 일어나 문을 열어줬고 강아지로 인해 나의 일상이 무너져도 그 존재만으로 힘이 났었다.  마가 뭘 못한다고 하면 당장 해결해 줘야 직성이 풀리고, 엄마 또한 손이 작은 내가 뭘 하냐며 온갖 집안일을 하면서도 나는 방에 가서 누워있으라 한다.


 는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런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퍼주는 사랑. 나의 모든 시간과 관심을 쏟아붓는 사랑.


 하지만 지금 전 연애를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여기서 내 노후를 책임지려면 부업을 더 해야 하지는 않을까, 지금 하는 일이 내 꿈은 아닌데,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는 나는 뭘 더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계속 발전해야 할 것만 같았고 그렇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상대방이 그리는 미래 속의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됐다. 그냥 지금 다니는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육아 휴직을 받아 애를 키우다가 애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단축근무를 하다가 다시 직장을 다니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안주가 좋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안주, 그리고 그 미래를 만들어줄 상대방이 고마웠던 것 같다. 그게 내 자아와 자유를 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그런 무책임한 안주에도 주변에선 그게 맞다는 듯, 잘했다그게 여자 행복이라며 칭찬도 하니 나는 그게 안심됐. 그게 맞는 거라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두 흐린 눈을 했다. 상대방은 결혼하면 생활비를 반반씩 각출하자 말했다. 나는 그럼 내가 육아휴직일 때는 어떡하냐고 물었고 상대방은 그건 그때 가서 상의를 하자는 말에 나는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좋다고 말했다. 제사상 사진을 보내며 우리는 제사를 간소하게 지낸다는 말에 결혼하면 저 요리를 다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저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고 답했었다. 내가 호감을 느꼈던 섬유유연제 냄새가 풀풀 나는 상대방의 옷도 사실 상대방의 어머니가 매일 빨아주는 옷이었다는 것도, 오늘은 엄마가 없어 자기가 직접 고기를 구워 먹었다며 업적을 달성한 것처럼 말하는 행태도. 미래의 내가 할 고생이었음에도 흐린 눈으로 외면했고, 현재의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위하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정말 나는 너를 사랑했을까. 정말 나는 이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데, 남을 사랑하는 것이 이 행복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참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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