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 외할아버지
1990년 대 초반,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완전 답답하게 만들었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시골 어머니의 지독한 아들 사랑을 소재로 했는데, 남녀 차별이 심했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란성쌍둥이로 아들과 딸을 얻었으나, 아들만 주구장창 이뻐하고 딸은 온갖 구박을 다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시대를 사는 딸들의 가슴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이름도 아들은 귀남이, 딸은 후남이니까 말 다했다.
나는 1982년생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이 판을 칠 때 태어났다. 우리 부모님은 성별로 우리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었다. 똑같이 먹이고 교육시켰다. 아들이라고 따로 불러 떡 하나 더 주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드라마 <아들과 딸>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 그렇게 오열을 했더랬다. 대체 왜?
우리 외가 쪽 이씨 가문에는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각 가정의 금쪽같은 손주들 사이가 매우 애매(?)하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는 2남 3녀의 자녀가 있다. 3녀인 세 딸 중에 가운데가 우리 엄마다. 큰 딸, 작은 딸, 막내딸이 시집가서 모두 사이좋게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렇게 골라서 낳기도 어려운데, 집집마다 사이좋게 남매를 두었으니 주변에서는 200점이라고 했다.
외가의 첫째 딸인 큰 이모와 둘째 딸인 우리 엄마는 10살 차이가 난다. 우리 엄마와 막내 이모는 띠동갑으로 12살 터울이 진다. 꽤 오랜 세월에 걸쳐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마지막 손주까지 보고 나서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어째 우리 집 손녀딸들은 다 인물이 없냐."
세상에, 딸들이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들 얼굴에 대한 이 냉철한 평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90세 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단정한 흰 와이셔츠에 중절모를 눌러쓰고 교회에 다니시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손녀들의 미모가 매우 아쉬우셨나 보다. 평소 말수가 적으신 분이 저런 대사를 입 밖으로 꺼내어 손주인 내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외모 지적은 오로지 '손녀'를 향해 있다. 즉, 아들들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게 비극의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각 가정에 남매가 쭈루륵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그 남매들 모두 딸보다 아들의 외모가 출중했으니 이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의 사촌오빠는 50대에 접어들었고, 나는 40대 중반에 들어섰고, 막내 사촌은 20대의 한창인데, 우리 남매들의 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 <아들과 딸>은 종영되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들과 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