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이모와 큰이모부는 전형적인 70년대 미남미녀 스타일이다. 지금은 두 분 다 70 중반을 넘기셨지만, 여전히 꽃할매 꽃할배의 면모를 갖고 계시다. 큰이모부는 숯검댕이 짙은 눈썹에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젊은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통기타를 안고 노래를 부르면 왕년에 처녀들을 꽤나 울렸을 법하다. 큰이모는 풍성한 검은 머리칼에 눈동자가 쏟아질 것 같은 크고 선한 눈, 마른 몸매로 휘청거리며 보호 본능을 절로 일으키는 아가씨였다. 참으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선남선녀의 만남이었다.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인 나의 사촌 오빠는 두 분의 강렬한 미모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전형적인 90년대 교회오빠 스타일로, 순하고 고운(?) 현대식 외모를 지녔다. 어릴 때는 꽃삽을 사달라며 우는 순댕이였고, 오만가지 책을 섭렵하는 똘똘이였다. 오빠가 50이 다 되도록 나는 그의 샤우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명절이면 자식 셋을 끌고 복닥거리면서도 오빠의 톤은 늘 일정했다.
그런 오빠 아래로 여동생이 태어났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사촌 언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녀가 무섭다. 우리 외가 이씨 가문에 비공식적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사납고 거칠 것이 없어서 언니가 말을 걸기 전에 감히 누가 먼저 말을 붙이지도 못했다. 자기는 농담인데,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언니는 8삭둥이로 태어나 몸이 약해서 큰이모부가 업고 학교에 데려다줬다고 했다. 늘 아픈 언니가 가여워서 우리 이모와 엄마는 언니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제발 사납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단다. 설마 그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줬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 날부터 언니의 전투력이 급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공식적인 데이터만 보면 그녀가 사나운 인생이 된 게 살짝 이해가 된다. 오빠는 얼굴이 하얗다. 언니는 까맣다. 오빠는 공부를 잘했다. 맨날 상을 타왔다. 언니는 학교만 가줘도 감지덕지였다. 심지어 오빠의 친구들조차 공부를 잘했다. 언니는 친구들도 험했다. 오빠의 대학생 친구가 언니 과외를 해주다가 울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또한 오빠는 순진했다. 즉, 눈치가 없었다. 언니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니 오빠가 답답해서 싫었다. 언니는 집에서 늘 '꽥꽥톤'으로 말을 했고, 오빠는 그런 악다구니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럴수록 부모는 딸이 어렵고, 아들이 편했다. 언니는 가족 안에서 외로워졌다.
우리 집 남매도 사정이 비슷했다. 남동생은 날렵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로 전성기 시절에는 지현우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지금 쓰면서도 재수가 없다. 비율이 괜찮은 편이라 키가 크지도 않은데 항상 더 크게 보인다. 머리도 똑똑해서 뭘 가르치면 금방 알아먹고 눈치도 빨랐다. 손재주도 좋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마음씨도 착하다. 동생이 가진 것을 다 빼면 바로 나다. 네모에 가까운 얼굴, 작은 키, 둔한 머리, 똥손...... 내가 어떻게 동생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막내이모네 사촌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훤칠한 키와 하얀 얼굴에 순한 성품을 지닌 남동생과 그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못난 누나가 거기에도 살고 있다.
아니, 어쩌자고 아들들이 월등한 미모를 독식해서 태어났단 말인가. 대체 어디에 써먹을라고? 심지어 본인들은 본인들의 잘생김에 관심이 없다. 하...... 그 옆에서 잘난 남자 형제를 질투하느라 성질머리까지 다 버린 우리 딸들에게 한 가지 죄가 있다면, 바로 열성 유전자를 몰빵 당했다는 것뿐이다.
한 배에서 나왔는데 5:5까지는 아니어도, 6:4 정도로 섞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못난 소리를 해본다. 우리가 부모에게 얼마나 예쁜 자식인지, 얼마나 귀한 자식인지, 우리는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