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15
엄마와 아이, 낯선 도시에서 한 뼘 더 자라나다
나는 아이 둘과 해외여행을 세 번 다녀왔다. 그런데 그 모든 여행에 남편은 동행하지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첫째, 해외여행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가 극명하다. 성수기에는 비용이 두 배 가까이 치솟지만, 비수기에는 절반 값으로 다녀올 수 있다. 남편은 직장 특성상 비수기에 휴가를 내기 어려웠고, 내가 육아휴직 중이던 시절이기에 아이들과만 여행길에 나서야 했다. 오히려 이 덕분에 ‘가성비 좋은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둘째, 계절적인 이유였다. 성수기는 대체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과 겹치는데, 이때는 오히려 여행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열대 지방은 여름이면 숨이 막히게 덥고, 겨울이면 바닷바람이 차가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직 어리고 체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무리한 일정은 부담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봄과 가을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시기가 곧 비수기였다. 결국 우리 가족의 여행은 언제나 ‘한 발짝 비켜선 계절’ 속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여행지는 난이도 ‘하’에 해당하는 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물놀이가 중심이었고, 나에게는 비교적 수월한 돌봄이 가능한 곳이었다. 숙소는 리조트형 호텔이었는데, 식사는 모두 호텔에서 해결할 수 있었고, 서커스 관람, 카약 체험, 어린이 캠프, 바비큐 파티까지 호텔 안에서 웬만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친절했고 한국어가 통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때 준이는 일곱 살, 윤이는 열 살이었다. 물을 유난히 좋아한 준이는 도착 첫날, 수영장에서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물을 잔뜩 마셔 장염으로 고생했다. 그 일만 빼면 모든 게 순탄했다. 더구나 윤이의 단짝 친구 가족이 함께여서 엄마인 나도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윤이는 친구와 둘이 수영도 하고, 카약도 타며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나는 주로 준이를 챙기면 되었으니 한결 여유로웠다. 저녁이 되면 함께 농구 게임을 하고, 화려한 서커스를 보며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돌이켜보면, 괌 여행은 준이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7세 가을 무렵부터 준이는 눈에 띄게 집중력이 좋아졌고, 말문이 확 트였다. 어린이집 가을 상담 때 담임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학교 들어가서도 걱정 없겠어요.”
그 말씀이 얼마나 기쁘고 안도감이 되었는지 모른다. 괌에서의 경험과 설렘이 준이의 내면을 한층 키워주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만약 괌 여행이 ‘본격 여행의 전야제’였다면, 후쿠오카는 진짜 자유여행의 시작이었다. 괌이 안전한 리조트 안에서 머물며 즐기는 휴식형 여행이었다면, 후쿠오카는 매일 발로 걸으며 도시와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일정이었다.
하카타 시내에 숙소를 잡고, 첫날과 마지막 날은 호빵맨 박물관, 백화점, 돈키호테, book-off 중고서점, 시장을 두 발로 샅샅이 누볐다. 시장 골목에서는 생선구이 냄새와 갓 튀긴 고로케 향이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좁은 골목 안, 낯선 언어가 들려오는 활기찬 풍경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신세계였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벳부로 향했다. 그곳의 명물인 일곱 개의 ‘지옥 온천’ 중 우리는 가마도 지옥과 악어 지옥을 들렀다. 끓어오르는 푸른 열탕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에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악어 지옥에서는 수십 마리의 거대한 악어들이 꿈틀거리는 장관을 보며 준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벳부의 2월 말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였다. 윤이와 준이는 대중 온천탕에 들어가 나란히 앉아 목욕을 즐겼다. 일본식 온천 문화가 낯설었지만, 금세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준이는 일본 음식도 유난히 잘 맞았다. 평소 좋아하던 우동과 돈가스는 물론, 고로케와 붓가케 우동까지 가리지 않고 척척 잘 먹었다.
출발 전에는 걱정이 많았다. 준이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나 싶어 단단히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 내내 준이는 약속을 잘 지켰고, 오히려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집에서는 아침마다 등교 전쟁이 일상이었는데, 여행지에서는 스스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호텔 조식 뷔페도 스스로 접시에 담아 먹었고, 짐도 챙기고 기념품도 알아서 골랐다.
후쿠오카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한 뼘 더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괌이 ‘맛보기’였다면, 후쿠오카는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성장하는 무대였다.
세 번째 여행은 올해 4월 초, 벚꽃이 막 피어나는 계절에 떠났다. 이번엔 오사카를 시작으로 고베, 교토, 나라까지 짧은 일정 속에 많은 도시를 돌아보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첫날 오사카 도톤보리에서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다코야키 냄새에 아이들의 눈과 코가 바쁘게 움직였다. “우와, 진짜 일본 같다!” 준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둘째 날 고베에서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항구에서 서양식 저택이 늘어선 기타노 이진칸 거리를 걸었다. “엄마, 여기 유럽 아니야?” 아이들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붉은 고베 타워와 바다 위 유람선이 만들어낸 풍경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셋째 날 교토는 인파로 북적였다. 기온 거리를 걸으며 아이들은 처음엔 들뜼다가 이내 지쳤다. 하지만 은각사의 모래정원 앞에서는 준이가 손가락으로 물결무늬를 따라 그리며 한참을 머물렀다. 북적이는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아이는 이미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 날, 나라에서는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슴들이 아이들을 맞았다. 윤이가 내민 사슴 전병 과자를 덥석 받아먹는 순간, 아이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찾은 동대사의 거대한 불상 앞에서는 두 형제가 조용히 서서, 말없이 그 위엄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운 웃음과 경건한 침묵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돌아보면 세 번의 여행은 그저 낯선 땅을 밟고 관광지를 둘러본 경험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행지에서 풍경을 본 것만큼이나 스스로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다. 낯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고, 지하철 노선도를 함께 들여다보고, 사슴에게 전병 과자를 내밀며 깔깔 웃는 순간—그 안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났다.
집에서는 늘 엄마를 찾던 아이가 여행지에서는 스스로 가방을 챙기고,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눈을 뜨는 아이로 바뀌었다. 집에서는 작은 일에도 투정이 많던 아이가, 해외의 낯선 길 위에서는 한없이 의젓해졌다. 아이들이 성장한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제야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대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이 아이를 성장시킨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여행은 아이를 ‘새롭게 보여주는 창’이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의 힘, 용기, 기쁨이 그 창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아이만을 비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번져왔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 안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 또한 그 시간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진 엄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