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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제나 Oct 04. 2023

너희를 만나 우리를 사랑하게 된 날들

저희도 남편들도 쌍둥이입니다


1. 프롤로그 - 너희를 만나 우리를 사랑하게 된 날들


나에게는 2분 차이 쌍둥이 언니가 있다. 우리는 외모와 목소리, 체형이 닮은 일란성 쌍둥이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는 정말 안 닮은 것 같지만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늘 우리를 신기하듯 쳐다본다.

우리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대학교를 같이 나왔고, 전공도 같이, 첫 회사 인턴도 같은 곳에서 했다. 어릴때는 항상 같이 다녀도 전혀 이상함을 모르고 자라다가 대학교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우리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점점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모든 걸 언니와 함께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혼자서 취업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고 하는게 당연했겠지만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으로 정체성의 큰 혼란을 느꼈다.

‘왜 우리는 늘 똑같이 하는 걸까?’ ’왜 나는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게 너무 무서울까?‘


많은 쌍둥이들이 어릴때는 같이 다니지만 커가면서 점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특히 대학교를 따로 가거나 전공을 다르게 선택하거나 회사를 다르게 선택해 생활하기 시작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잘못된것 같지만 언니와 떨어지기 싫은데’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거의 모든 행동을 함께 하며 살아갔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언니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다 갈등이 생기면 도저히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보다 가까운 사이인 언니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된것만 같았다. 일반적인 자매사이라 하기에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거의 비슷했고, 서로에게 비밀이란 없었다.


우리가 태어나고 약 40여일쯤 뒤 미국에서 또 하나의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들 또한 초,중,고,대학을 함께 다녔고 첫 직장, 알바도 모두 같은 곳에서 했다. 처음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기로 결정된 직후 그들과 우리는 쌍둥이축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형은 언니와 동생은 동생끼리 결혼하게 되었다.

처음 쌍둥이축제에서 만난 후 5년이 지났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때부터 엄청난 편안함을 느꼈는데, 지금까지 쭉 느끼고 있다. 소울메이트 라는게 있을까, 운명적인 사랑이란 게 정말 존재할까 늘 궁금했었다.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니까 나오는거지, 내 인생에 그럴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만약 있다 해도 60살 이후나 되서야 겨우 ‘아 그때 그거 사랑이었네’라고 뒤늦게 알아차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버킷리스트에 ‘운명같은 사랑 경험해보기’의 목표기한은 60살이었다)


5년 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을때 주변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돌아올땐 파란눈에 금발 남자를 데리고 올게”했는데, 우리와 비슷한 눈동자, 머리색을 가진 미국 쌍둥이들을 데리고 왔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함께 산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남편들은 미국인이라 우리는 그들을 미둥이(미국 쌍둥이)라 부른다. 미둥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사이가 좋았다. 여행 중 거의 매일을 지지고 볶고 싸우던 우리 자매에게 그들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서로 짜증을 한번 내지 않고 언성 높아지는 걸 본적이 없었다. “너네는 안 싸워?” 라는 우문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인데 왜 싸워?” 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며칠 전 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제커플이며 쌍둥이커플인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예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갈등이나 고민이 없냐고 물으셨다. 방송에 나와 말 못할 고민이나 갈등을 말하고 다른 연예인 게스트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리라고.

“아 저희는 만족할만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서요. 딱히 큰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데..”

“최근에 뭐 다투거나 갈등이 있은 일이 없으세요?”

“최근이요? 네 딱히 없는데..”

전화를 끊고 딱 하루 뒤, 자기 전 침대에서 숨이 안쉬어질 정도로 울었다. 옆에 있는 제프에게 서럽고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폭발했다. 물론 pms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렇게 울어본건 꽤 오랜만이었다.

제프는 “숨쉬어 내사랑”이라고 말하며 안아주었다. 덕분에 내가 거의 호흡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막힌 코말고 입을 벌려 숨을 토해냈다. 진정이 되고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갈등이 없기는 개뿔”

타인에게는 우리 관계가 너무 만족스럽기만 하다고 365일 중 365일이 행복하기만 하다고 비춰지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날들은 너무 만족스럽지만 가끔씩 오는 갈등에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날들. 그런 날들이 쌓여 지금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부부관계는 어떤가요? 넷이 사는데 갈등은 없나요?” 묻는다면, 나는 우리는 “너무 좋아요” 라고 말하게 될거다. 감정이 밑바닥을 칠만큼 관계에서 힘들었던 적은 돌이켜 보면 손에 꼽을 정도다. 없지는 않았다. 너무 사랑하지만 나도 상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더 커지고 신뢰는 더 깊어진다. 어쩌면 그런 사소한 갈등들이 있어 관계가 더 탄탄해지는 건 아닐까. 그로인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게 되는지 배우게 되었으니까.


글을 공개적으로 써보려고 하니 내 무의식에서 소리를 질렀다.

“너무 자만하는 거 아냐?” “그래서 너네 관계 좋다고 너 행복하다고 자랑하려고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다 갈등 최고로 겪게 돼서 헤어지게 되면 어쩌려고 저런 오만한 짓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서다.

자주 싸우던 언니와 깊은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고, 사랑따위, 연애따위, 결혼따위는 내 인생에 없지 않을까 했었던 나에게 남편과의 관계는 행복 그 자체다.

무엇보다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들었던 나와의 관계가 달라졌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 발버둥쳤지만 비난과 자책으로 끝없는 우울의 늪에 빠졌던 나날들을 돌아보며,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괴로운 관계속에서 희망을 보지 않을까 하는 아주 오만하면서도 아주 절실한 마음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태어나 자라며 우리처럼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을 본적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티비속이나 강연속 책속에 아주 가끔 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듣고 보고 자란 환경속에서는 없었다. 늘 갈등과 다툼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로만 느껴졌지,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들어본적도 만나본적도 없었다. 미둥이도 우리도 모두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돌연변이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서 관찰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부모님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서 답습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전에 행복하고 건강한 연애를 해본적이 없고 상처와 아픔만이 남는 연애를 했었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서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부족하고 자신감 없고 편견과 혐오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 하지만 동시에 사랑이라는게 대체 뭔지 알고 싶었던 때에 서로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편했지만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았던 때라 상대를 쉽게 판단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1년에 한 두 번쯤은 제프에게 불만이 쌓여 괴로울때도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만 지나고 깨닫게 된다. 그건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때문이었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관찰해보기 시작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쌍둥이 자매와 형제가 어떻게 이토록 하루하루 매순간 행복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을까.


어릴때부터 듣고 보고 자란 부부라는 개념은 서로를 무시하고 싸우고 욕하고 남편은 남의 편, 아내는 집안일만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 지인들, 친척들의 관계, 더 나아가 티비만 키면 나오는 갈등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부부관계들을 많이 보았다. 몇십년간 평생 사이좋게 살아가는 소수의 몇몇 연예인 부부를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연예인이니까 돈이 많을테니까 우리와 다른 세계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저들도 쇼윈도일지도. 사이가 좋은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너무 오글거리잖아 비현실적이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정말 저럴까? 어떻게 저럴까? 미둥이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 연예인 부부들의 삶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콩깍지가 안벗겨지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 권태기라는 단어가 이해가 안되고 싸우다 라는 단어도 너무 크게 들린다. 말다툼, 다툼이란 이제 다른 세계 언어처럼 들리고 화를 낸다 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되었다. 부모님에게 보고 자라지 않아도 이렇게 살수 있는거구나를 깨달으며 사랑을 꿈꾸고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구나.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일란성 쌍둥이라서인 건 아닐까. 쌍둥이로써 사는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때부터 우리의 인생에 행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안의 진정한 내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 아닌, 어디선가 들은 사회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쌍둥이는 떨어져야해 독립적이지 않잖아”

“부부는 각자 살아야지, 넷이서 살다니 이상해”

“국제커플이니 영어를 잘해야하는거 아닌가?”

“남자가 좀 더 주동적이여야지, 미국남편들, 왜이렇게 수동적이래?”

“아이를 낳아야지“


정말 많은 사회의 목소리들에게서 귀를 닫으며 우리는 우리 네명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살고 있다. 그러니 삶이 더 만족스럽고 더 편하다. 더 행복해졌다. 더 만족스러워졌다. 용기가 필요한 선택들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선택할 수 있었던 스스로에게 감사하다. 사람들이 조금 더 남을 보지 않고 스스로를 제대로 보며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너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한때는 쌍둥이인게 단점이라고 생각해 괴롭기도 했던 우리 넷의 인생에 서로가 나타나 완전해졌다. 쌍둥이로 태어난 것 자체로 행운이며, 쌍둥이를 만나 일생을 함께 하게 된것은 더 큰 행운이다. 그 행운들에 매 순간 감사하며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행운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를 바란다.

언니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언니로부터 독립해서 떨어질 필요 없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건 자존감이 미치도록 높은 일부 소수들만 느끼는 건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의 존재자체를 고마워할 수 있게 되었다.

존재자체로 사랑인 나 자신,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신들이 존재 자체로 사랑을 느끼기를. 온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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