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둥이들(남편들)은 어릴 때 기억을 소환해 그리워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어릴 때 기억뿐만 아니라 몇 년 전 기억들도 돌이켜 생각해 보며 그리워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그들이 나는 정말 신기했다. 나에게 과거란 돌이켜보면 부정적인 감정만 떠오르던 그런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을 떠올려 봐도 ’나 다시 돌아갈래 ‘ 하는 기억은 거의 없다. 딱 한순간만 빼고.
2018년 여름은 지금도 떠올리면 그리운 감정들로 물드는 순간이다.
우리 인생을 180도 바뀌게 해 주었던 미둥이와의 만남이 일어났던 순간이었다. 내 세계가 넓어지며 달콤하고 따뜻한 감정들이 물밀듯 내 안으로 들어왔었다. 가끔 내 눈도 못 마주치고 손도 잘 못 잡던 그날들을 돌아가 관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티 없이 순수하고 맑았던 그런 기억이 나에게도 있었다.
미둥이를 만나기 전까지 아니, 만나고 나서도 나와 언니는 극 비혼주의자였다. 미둥이들도 우리를 만나기 전까지 극 비혼주의자였다. 우리 넷은 모두 결혼에 대해 전혀 환상이 없었고, 오히려 결혼을 하면 더 좋지 않다는 인식만 강했다.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도 나는 비혼주의자의 이미지가 강했고, 마치 영원할 듯이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때 알았던 한 지인이 했던 말은 좀 인상 깊었다. 내가 비혼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말속에 숨은 ’ 사실은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요‘하는 나도 몰랐던 속뜻을 알아차렸던 것일까.
“나도 아내도 거의 첫 연애였는데 30이 넘어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얼마 안 돼서 결혼하고 지금은 아이도 있고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어” 육아로 힘들어 하긴 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그때까지도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결혼하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부모님부터 친척 지인 친구들 티비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부갈등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와 언니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혔다. 결혼뿐만이 아니라 연애를 하기도 힘들었다.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할 때도 있었다. 사회에서 보면 남자친구가 없이 몇 년을 싱글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루저같아 보였다. 마치 연애를 안 하면 무슨 병에 걸릴 것처럼 짝이 없는 건 비정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와 동생과 같이 시시덕거리며 지내는 게 좋았다. 자매끼리 지내면 너무 편했고 그러니 더욱 연애에 대한 갈망도 없어졌다. 타인과 부딪쳐서 내 세계와 상대의 세계를 직면해야 할 용기는 없었고, 그런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그냥 우리 자매 셋이서 늙어죽자며 위안을 했다. 그런데 마음속 한편에는 늘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는 언니와 떨어져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쌍둥이로 살아가면 장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우선 사람들에게 호감으로 인식이 되고 혼자일 때보다 존재감이 커서 늘 더 관심받고 기억된다. 친구같이 든든하고 뭐든지 함께해서 외롭지 않다. 어릴 때는 무서운 걸 보고 나면 늘 한 침대에서 붙어서 같이 잤다. 그러다 새벽에 깨 화장실을 가야 하면 언니를 깨워 꼭 같이 갔다. 언니도 나를 깨워 화장실 앞에 세워놓았다. 어릴 때뿐만이 아니다. 만 25살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간 뉴질랜드의 기숙사에서 낯설고 무서운 첫날밤, 우리는 1인용 작은 침대에서 둘이 꼭 붙어 잤다. 너무 좁아 몸을 돌릴 수도 없었고 너무 불편했지만 우린 따로 떨어지지 못했다. 다 큰 성인 둘이, 심지어 같은 방에 우리 말고도 2명이 더 있었다.
우리가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어릴 때 친구와 싸워 기분이 안 좋은데 언니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려 있었다. 남자친구와 싸우고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랑 내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하지만 큰 단점이기도 한 부분은 우리끼리 풀린다는 것이다. 싸운 대상은 여전히 나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나 있을 텐데 그래서 당사자끼리 대화를 하며 풀어야 하는데 나만 어느새 풀려 있으니 상대는 더 답답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커플끼리 있었던 일을 언니에게 말을 하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고 외롭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을 것이다. 쌍둥이와 연애하는 사람들은 아마 답답하고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사랑하고 노력해도 쌍둥이 형제자매만큼의 관계를 맺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언니와 나처럼 뭐든 함께 해오고 자란 쌍둥이일 경우 더욱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형제자매가 없이 혼자 자란 친구들은 우리를 늘 부러워했다. “너네는 별로 외롭지 않지?”라고 물으면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내가 쌍둥이인 것이 특권인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우리를 좋아해 주는 친구가 고맙지만 우리는 그 친구만큼의 마음과 감정으로 그를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쌍둥이는 비교적 공감 능력이 더 높다고 한다.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뭐든 같이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둘이나 되고 또 공감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니 얼마나 좋았을까.
쌍둥이 언니와의 독특한 애착관계 때문에 정체성 혼란은 나에게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늘 언니와 상의하고 함께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혼자 판단을 하고 선택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이 사실을 자각한 날 왠지 너무 무서워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혼자서 살아가는데 나 혼자 도태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갓난아기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언젠간 떨어질 언니로부터 멀어지기 연습을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니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언니로부터 독립이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보다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다. 그건 마치 내 일부를 포기하는 느낌이랄까. 당연한 내 신체 일부가 없다고 상상하는 느낌이랄까.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언제까지 같이 살 거야? 나중에 결혼하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같은 말을 들어왔다. 둘이 평생을 살게 아니라면 언젠간 떨어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스스로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에게서 독립은 너무 하기 싫고 불편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인생의 임무라고.
그래서 정말 큰 마음먹고 혼자서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자니 너무 두려워 우선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일주일 해보기로 했다. 언니가 없이 혼자 한 여행은 외롭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자유로웠고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마주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잠을 잘 못 자고 마음이 왠지 허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했기 때문에 혼자 여행 온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제주여행을 계기로 조금 더 용기를 얻었다. 집으로 돌아와 당장 1주일 후 떠나는 세계여행의 준비를 차차하고 있는데 신문에서 제주 게스트하우스 20대 여성 살인사건 소식을 알려주었다. 떠나기 전 생생한 정보를 들어서 그런지 언니와 나는 너무 걱정이 됐다. 언니는 대만으로 나는 칭다오로 들어가는 비행기 표를 이미 끊어 놓은 상황이었다. 부모님의 걱정도 더해지고 담이 크지 않았던 우리는 태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태국에서 잠시 만나 같이 여행하고 다시 떨어지자 말했다.
언니와 나는 따로 세계 곳곳을 누비려 했지만 우리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언니로부터 독립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대에게 나와 언니의 애착관계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고, 나와 상대에게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치부를 언니가 알게 되어도 괜찮은 관계가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