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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o Aug 14. 2024

열받으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뛰쳐나갑니다.

오늘 만난 사람

수요일 오후 3시, 정확한 시간에 사무실 전화벨이 울린다.

010-91…

또 왔네.

전화 본체 액정화면에 뜬 핸드폰 번호를 보자마자 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 나: 안녕하세요?ㅇㅇㅇㅇ입니다.


- 민원인: 안 되는 거예요?


- 나: 네? 누구시죠?


- 민원인: 저 oo사는 xxx인데요. 왜 아직 소식이 없어요? 영 안 돼요?




5개월 전 접수한 60대 여성이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인사도 없다. 통성명도 없다.

첫마디는 항상 “안 되는 거예요?”이다. 휘성의 안 되나요, 도 아니고.

당연히 나는 당신을 안다.

핸드폰 번호를 외우고 싶지 않아도 외울 수밖에 없을 만큼 전화를 받았다.

수신번호를 못 본채 받았다 하더라도 ‘안 되나요?’ 하는 목소리로 안다.


내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가족, 친구, 지인의 전화를 받으면 “어. 왜? “라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을 (사적 영역에서는) 모른다.

안방에서 제 가족에게 전화 걸듯 이런 식으로?

무례하다.

전화를 걸자마자 본인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대뜸 안 되나요, 라니.

이 사람은 나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나는 사회적인 통념이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두려워하고, 상대의 그런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난다.

내 성정이 외곬으로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이들은 ‘그럴 수도 있지’, ‘사회생활 안 한 사람은 그럴 수도 있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곧잘 흥분한다.

나 또한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성격 이상이 틀림없다.





- 나: 선생님, 다음에 전화하시면 성함부터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안내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 민원인: 매번 전화하는데 나 몰라요? 그거는 그쪽이 센스가 없는 거지.


(귀는 있는데 제 역할을 못한다. 안 들리는 건 아닌데 못 알아듣는다.)


- 나 : 그쪽 아니고, 저는 ooo입니다. 아니면 계장이라고 불러주세요.


- 민원인: 아무튼, 빨리 좀 해줘요. 나 이번 달까지만 기다릴 거야.




끊었다.

나는 ‘아무튼’이 안되는데 끊어버렸다.


(내일은 꼭 사직서 낼 거야.)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얼굴이 달라 올랐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내 급발진 버튼을 찾아낸 것 같다. 정밀 타격으로 나는 치명상을 입었다.


”국장님, 저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 “


국장은 벌벌 떠는 내 손을 내려다보더니 잘 안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너무 저자세로 나갈 필요 없어. 당당히 말해. 욕하면 녹음하고.”


이 일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실무자의 노고를 윗사람은 잘 모른다.

전투 경험이 없는 자는 알 수 없다.

전장에서 전투를 함께한 동료만이 안다. 하지만 이해한다.

나는 컨버스 운동화 끈을 꽉 매고 회사 밖을 뛰쳐나갔다.

목적지 없이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아무리 길어도 10분 안에는 내가 있던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차분히 전화를 받고, 안내하고,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바깥의 새로운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신 뒤 빠르게, 조금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가볍게 뛴다.

산책과 가벼운 뜀박질은 기분 전환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10분이라도 밖을 걸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도 소위 ‘뚜껑 열리겠다’ 싶으면 운동화로 갈아 신고 끈을 조여 맨 후 회사 근처를 헤매듯이 다닌다.

키 큰 나무, 구름 낀 하늘, 오래된 집들, 여유 있게 걷는 사람들, 작은 가게의 간판을 보며 심호흡을 하면 숨이 잘 쉬어진다.

그리고 바로 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삭아서 마치 오래된 것처럼 색이 바랜다.

이것의 과학적인 원리는 모르겠지만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후로는 남편과 감정상 대치 상태가 이어지거나, 아이가 못견디게 치댈 때, 우울할 때 같이 있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집 앞 동네 슈퍼가 아닌 1km 떨어진 데까지 걸어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오기도 한다.

내게는 목적 없는 걷기가 쓰레기통을 비우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당분간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이후에 얼굴이 달아오른 채 승냥이 같은 눈빛으로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여자를 보면 저인 줄 아십시오. 미친 사람 아닙니다. 해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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