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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14. 2024

연재에 앞서

오늘 만난 사람

저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민원’을 처리하고, 상담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죠.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은 어렵습니다. 저와 같은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전국에 열 명도 채 안되기 때문에 알고자 하면 금방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생계유지와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한 것이니 이 정도로 얼버무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합법적인 일입니다!)


에너지가 안으로 향하는 사람에게 매일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고된 일입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화를 냅니다. 하소연을 하고, 불운한 처지를 토로하죠.

저는 묵묵히 듣습니다.

그게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타인이 쏟는 부정적인 감정을 담는 일에는 인내와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자진하여 그들의 쓰레기통이 됩니다.

쓰레기통이 꽉 차면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깨끗이 비우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씹다 만 껌이나 머리카락처럼 쓰레기통에 들러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이 오물들을 비우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하고, 성당에 나가고요.  

종종 여행을 떠나 쓰레기를 버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고, 소위 ‘진상’의 패턴도 잡혀서 나름 유연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에는 이력이 나지 않아요.

겪으면 새롭게 아프고, 더디게 아뭅니다.


십 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구분 짓는 건 유아적이긴 하지만 제가 가진 프리즘을 통해 보면 인간의 군상은 이렇습니다.

못된 사람, 착한 사람, 이상한 사람, 무례한 사람 등등.


일한 해를 세어보니 그간 5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네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고, 저와 1년 가까이 연락하며 일을 마무리 지은 사람을 세어보면 그 정도니까 적은 수가 아닙니다.

이상하지만 500명 중에 1/3은 빌런이고요, 1/3은 예의와 품위를 지키는 사람, 나머지는 기억에도 안 남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빌런이 그렇게 많냐고요?

저의 세계에는 많습니다.

그들은 속박을 풀기 위해, 자유를 다시 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에요. 제 것을 속히 챙기기 위해 빌런이 되는 편이 빠르니까 점잖은 말보다 악다구니를 택합니다.


제가 앞으로 연재할 글은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들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서 제 삶을 흔들고자 할지라도 결국 그들은 제 삶에서 단역일 뿐입니다.

이 글은 저의 성장일기입니다.

아이 육아일기를 써야 할 마당에 다 큰 어른의 성장일기를 쓰네요.

  

저는 야물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요, 생긴 것만 그렇지 속은 별로 단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른 쪽에 가깝습니다.  

남이 하는 무례한 말에 쉽게 부르르, 오만한 태도에 파르르 합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사람들에게 꺼내고 싶은 걸까요?

제게 무례하게 군 이들의 허물을 들춰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이제와 그들을 험담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 저의 대응은 항상 성인군자 같았을까요?

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별반 다를 거 없는 인간일 겁니다.

이 글은,

’나 진짜 그만둘 거야.‘

퇴근할 때면 굳게 다짐했다가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사무실에 나와 앉아있는 생활을 무려 10년이나 반복한 저에게 애썼다고 말하는 글이자

오늘 만난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글입니다.

왜, 나랑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만 봐도 이상하게 위안이 되잖아요.

나 혼자가 아니구나.


도닥도닥,

괜찮습니다.

다 지나갑니다. 사람도,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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