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이에게 받아 본 가장 이상한 질문은 무엇인가?
코끼리나 기린을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같은 허무한 농담 말고, 현실 세계에서 던질 순 있지만 결코 가벼이 되돌아올 수 없는 질문 말이다.
오늘 사무실에 찾아온 오십 대 남자는 상담 테이블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고는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온 세상의 근심 걱정을 홀로 떠안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나의 낯빛을 찬찬히 살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전처는 내 첫사랑입니다. 그리고 지금 같이 사는 사람은 저의 마지막 사랑이에요. 선생님, 도저히 둘 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
그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희미하게 번졌다.
“네?”
나는 그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내게는 여지없이 낯설고 이상야릇한 물음이라 자동으로 반문하는 말, ‘네?’가 튕겨 나왔다.
그는 네 번째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오랜 습관인양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전처랑 애들이랑 속초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결혼기념일 선물로 애들 엄마 목걸이도 준비했는데 지금 같이 사는 사람이 이해를 못 하네요. “
그는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듯이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못 본 척 태연히 테이블 유리 안에 넣어둔 삿포로 설경 사진에 시선을 두었다.
할 말이 없었다. 실은 침묵이 내 대답에 가까웠다.
그는 내게 실질적인 답을 듣기를 원하는 것인가, 그의 삶을 열어 오랜 시간 갇혀있던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낼 사람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눈만 껌뻑였다. 내 입이 열리지 않으니 그는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전처랑도 이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20년을 살았으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만큼은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이혼을 하고 호적에 올린 겁니다. 그런데 지금 두 여자 중에 한 여자만을 택하라고 하는데 저는 정말 죽고 싶습니다. 두 여자 다 사랑하는데 꼭 한 명만 선택해야 하나요, 선생님? 너무 괴롭습니다.”
그는 내 앞으로 다가앉으며 재우쳐 물었다. 그가 묻는다. 나는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어…”
나의 즉각적인 대답을 듣지 못한 그는 성마른 얼굴로 말을 끊었다.
“전처는 제가 가정으로 돌아올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 지금의 처는 이 사람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기를 바라는데…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사랑을 끊어냅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늘에 걸고 두 여자 똑같이 사랑하는데요.”
그의 눈에 눈물이 넘칠 듯 고이고 눈주위가 붉게 번졌다.
내가 법륜스님도 아니고, 오프라 윈프리도 아닌데 그는 내가 마지막 관문에서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자인 듯 나의 입만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외람되지만 저는 선생님보다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이 적습니다. 아는 게 없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속으로는 살다 살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지껄이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으므로 나는 최대한 체면을 차려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듣고 싶은 대답이 따로 있으신 거죠? 그 대답을 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보태놓고 나는 성급히 입을 닫았다. 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온 세상에 묻고 다닐 것이다.
‘두 여자 다 사랑하시면 되죠. 사랑은 죄가 아닙니다. 사랑이 결국은 이깁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가 설정한 사랑의 범주에는 윤리나 도덕, 상식이 들어갈 빈틈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둘로 공평하게 갈리는 것이 능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그의 주장이 ‘개똥’일지언정 진심은 의심하지 않았다.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지 우는지 모를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경험이 많으시잖아요? 저 같은 고민하는 사람이 그동안 있지 않았나요? “
“전혀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질문입니다.”
“인생 상담도 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 찾아왔네요. 바쁘신데 시간만 빼앗았네요.”
그가 끙- 힘을 주며 일어났다. 어깨가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아닙니다. 저도 더 이상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서... 모쪼록 잘 해결되길 바랄게요. “
그가 문고리를 잡은 채 나를 돌아보더니 자분자분, 훈계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이죠. 하지만 사랑은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잘 생각해 보세요.”
“... 조심히 가세요.”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밑도 끝도 없이 무례해서 상대하기 싫은 사람도 있고, 나의 말을 무작정 화로 돌려주는 사람도 있고, 술을 먹고 횡설수설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나 행동으로 희롱하는 인간도 있고.
그래도 10년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인간 군상에 교집합이 보인다. 척하면 척, 상대의 표정이나 말을 통해 대응 방법을 달리 강구하게 된다.
벌컥 화부터 내는 사람에게는 일단 들어주고, 공감(공감이 안 되어도)을 해주고 조용한 음성으로 차분하게 대응한다. 화내는 사람은 갑자기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를 낼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그널을 준다. 이 신호를 타이밍에 맞게 잘 캐치해야 한다.
그리고 무례한 사람에게는 ’매우‘ 사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매뉴얼대로 응대한다. 무안할 정도로 감정을 싣지 않고 업무적으로 할 말만 하는 것이다. 마치 학습된 AI처럼. 그러면 상대는 ’ 인간적인 ‘ 틈을 내가 먼저 파고들어 주기를 바란다. 찰나의 시간에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이 지난한 과정 중에 자신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그런데 오늘 찾아와서 이처럼 ‘개떡’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나는 경험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상황을 통제한다. 오랜 시간 반복해서 하는 일이 내 성정에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난생처음 받아 본 질문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고, 상황을 컨트롤해야 하는지 적이 당황스러웠다. 느닷없는 기습에 중심을 잃고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꺼림칙했다.
오늘 내가 한 답변이 적절했던 것인가? 그에게 결국 ‘나는 모름.‘으로 답했지만 내심 찜찜하다.
그가 ‘개떡’을 던져주더라도 나는 ‘찰떡’으로 응답하고 싶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범주와 관용의 폭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나는 내 자질을 의심하고 다시 성찰의 벽 앞에 섰다.
나는 통상적인 윤리와 상식의 한계를 벗어난 사람에게조차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몇 마디의 말로 그가 변화할 틈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일조하기를 원한다.
나는 진리를 말하는 성인도 아니고, 깨우침을 주는 현자도 아닌 일개 속인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여기 오는 모든 이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범인간적인 연민에서 오는 것인지, 직업병의 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것은 안다.
나는 세상에 타고는 악인은 없다고 믿는다. 해괴망측하고 부도한 짓을 저지른 자에게도 일말의 연민이 든다. 내가 이 일로 밥을 벌어먹으며 감당해야 할 나의 문제다.
내 연민의 경계는 매우 모호해서 때로는 ‘그 사람 불쌍하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그걸 내 안에서 삭이느라 기력이 타고 줄어드는데,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밀어내는 일이 연습이 되지 않으니 큰 문제다. 나의 영혼과 힘을 태우면서 얼마나 오래 이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말이 적고, 행동이 재지 않은 것은 나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때에 이런 식으로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버린 것이 연유가 아닌지 생각하며 내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연민이 아닌 적당한 거리 두기임을 상기한다. 그리고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타인의 감정은 날것으로 받고, 나의 마음은 최대한 다듬고 벼려서 상대에게 돌려주느라 애를 쓰는 내가 오늘은 조금 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