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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트 Feb 10. 2024

시창작론 정리_도약

주간 라트 2406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시를 쓰는 사람의 생각이 먼저 도약을 해야 한다. 도약은 일상적인 것을 뛰어넘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뛰어넘음'이란 엄청난 용기와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우리는 일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는 출퇴근을 산으로 하는 것을 기본 생활 패턴으로 갖고 있다. 십수 년을 산으로 출퇴근을 하였으니, 같은 산을 약 1500번은 오르내린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앞만 보고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니, 보이는 풍경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단지 몸을 살짝 돌려 뒤를 보기만 했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치 이 산을 내가 처음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풍경은 내가 1500여 번을 보아온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단순한 변화로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항상 변화 없이 살아온 생활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그곳에서 사고의 도약이 시작된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위험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만나는 싱싱한 공포와 비경 앞에서의 감탄은 일상에 묶인 그의 시간대를 창조와 생명의 축제로서 비일상의 시간대로 훌쩍 건너뛰게 한다. 물론 그 풍경은 명승지나 웅장한 스케일의 경관들과 비교할 땐 사소한 발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찾아낸 풍경은 통조림 깡통 속의 참치가 아니라 살아 펄떡이는 대양의 참지와 같은 싱싱한 삶의 맥박 음을 선물한다. 이 자발적 경험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풍경이라도 그 어떤 명승지 못지않은 장관을 그의 삶의 지도 속에 기입할 것이다. <시창작론> 22. 23쪽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언어의 특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를 쓸 수는 없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하여 사용되는 도구이다.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많이 사용되는 것이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통하여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기본 도구인 언어가 때로는 서로의 의사소통을 방해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언어의 특질 때문이다. 그 특질은 언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언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화자의미, 청자의미, 기호의미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의미가 서로 잘 통해야 성공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의미가 다르고 듣는 사람의 의미가 다르다면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정확한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어에는 다양한 의미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의어, 반의어, 동음이의어, 다의어 등이 그것이다.


의사소통의 주요 도구인 언어의 이러한 다양한 특질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불명확한 언어의 특질이 시인으로 하여금 언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 준다. 시인은 심미적인 환기를 통해 고정된 질서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언어의 도구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다음에서 시인이 도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어를 사용한 유명한 일례를 소개한다.


때는 바야흐로 1920년대 추운 겨울이 거의 끝나가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시기였다. 뉴욕의 한 공원에서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 걸인은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그 팻말에는 "나는 맹인입니다.(I am blind)"라고 적혀 있었다. 맹인의 애처로운 구걸 행위에도 지나가는 행인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지나쳐 갈 뿐이었다. 


그때에 한 사람이 그 걸인 앞에 서서 한참을 머물러 있더니 쭈그려 앉아 그 걸인이 들고 있는 팻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무언가를 쓴 후에 홀연히 자리를 떴다. 그가 자리를 뜬 후에 그토록 냉담하던 행인들의 적선이 이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맹인의 앞에 있던 동냥통은 사람들이 넣어준 돈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맹인이 의아해하며 행인들 중 한 사람에게 자신의 팻말에 무어라고 적혀있는지 읽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팻말에는 "봄은 곧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가 없답니다.(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see it.)"라고 씌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걸인의 팻말에 문구를 바꾸어준 사람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었다. 


걸인이 들고 있었던 팻말의 두 문장에 어떠한 차이가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살펴보자.  


일상어의 표현이 정보만 제공하는 도구 역할일 뿐인 반면에 브르통이 쓴 문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맥락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맹인입니다."는 걸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맹인이 겪는 삶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정서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봄은 곧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가 없답니다."는 걸인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음에도 맹인이기 때문에 걸인이 겪어야 할 삶의 체험과 정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봄'이라는 단어는 '맹인'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맹인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감각적으로 환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봄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산과 들로 아름다운 꽃을 보며 피크닉을 즐기게 되지만 맹인은 일반 사람들의 일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삶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줌으로써 급기야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게 하는 직접적인 행동까지 유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 진술과 정서적 진술에 대해서 리처즈(I. A. Richards)는 '언어의 과학적 용법(scientific use of language)'과 '언어의 정서적 용법(emotive use of language)'이라는 용어로 두 언어의 목적과 쓰임의 차이를 설명한다. 


리처즈는 언어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언어의 과학적 용법'인데, 이것은 지시 대상을 어김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지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언어의 정서적 용법'으로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용법인데, 이것은 말이 지시 대상을 가리키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서를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목표를 둔다.


또한 리처즈는 '진술(statement)'과 '의사진술(pseudo statement)'이라는 용어로 과학 언어와 시의 언어의 차이를 설명한다.


'진술의 언어'는 지시 대상과 사실에 부합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인 반면에 '의사진술의 언어'는 진술의 형태를 지니면서도 말의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언어를 말한다.


위의 일화에서 "나는 맹인입니다."는 진술의 언어이며, "봄은 곧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가 없답니다."는 의사 진술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의사진술의 언어는 그 의미 내용이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거나 뚜렷한 윤곽으로 나타나는 실체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문장이 전달하는 감각적 경험이나 정서적 공감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손에 잡히지 않는 감각적 체험이나 기분, 감정 등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의 언어는 진술과 맞먹는 또 하나의 범주로서의 '의사진술'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시론> 12쪽 


[참고문헌]

- 김신정, 손택수, 신동옥, 이근화, 하재연 공저(2021). 시창작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 조남호. 윤석민 공저(2012). 언어와 의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 김신정, 오성호, 유성호, 오문석 공저(2015), 현대시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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