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나아지기 2화
'허리는 안녕하신가요' 글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쓸 수 있으니 글쓰기가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정해진 주제로 글을 쓸 때는 무슨 내용의 글을 쓸지가 정해져 있으므로 시간을 내서 쓰기만 하면 되었는데 아무 글이나 쓸 수 있는 지금은 무엇을 쓸지부터가 어려움이다.
마치 어린이들이 커 가는 과정 같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처럼 정해진 순서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면 이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이지만 무엇을 할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미래를 결정지어 나가는 과정이 어려운 것과 같은 상황인 듯하다.
더욱이 요즈음과 같이 SNS가 발달된 상황에서 우리는 짧은 글 쓰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조금만 긴 글을 쓰려하여도 어떻게 글을 이어나갈지 몰라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기야 SNS에 쓰는 짧은 글도 쓰기 귀찮거나 어려워서 그 보다 더 간단한 이모티콘으로 대체하는 상황까지 와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직접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이모티콘만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발맞추어 이모티콘에 이미 내가 쓸 글자까지 적어 놓은 이모티콘도 많이 나와 있다.
이러다 보니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 줄어들고 또한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글쎄 모르겠다. 혹시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이 뛰어나서 굳이 긴 글을 쓸 필요 없이 짧은 글이나 이모티콘으로 모든 감정이 교환되는 초초단편시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무슨 긴 글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헐~' 한 자로 모든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인데 말이다. 이렇게 짧은 글도 길게 느껴지는 사람들에 의해 말을 줄여서 사용하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글자의 머리말이나 핵심어만 따서 쓰는 이 신조어 줄임말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조어 줄임말의 뜻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신조어 줄임말 사전까지 나오고 신조어 줄임말 테스트까지 인터넷에 떠 돌고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일상 대화가 아닌 전문 지식을 전달하거나 많은 내용이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조어 줄임말만 가지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나의 복잡하고 심오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고자하는 글의 주제와 관련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내가 '허리는 안녕하신가요'라는 주제로 35편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소설가가 방송에 나와 자신이 글을 써 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내용을 보면 작품을 쓰기 전에 관련된 곳을 찾아가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자료 조사를 하여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허구로 꾸며내는 소설을 쓰더라도 작가의 경험이나 지식이 뒷받침되어야만 방대한 글을 쓸 수 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작가의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는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이 완전히 상상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직접 혹은 간접의 경험이나 지식이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미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잘 활용하면 되겠지만 말이다. 그 뒤에 그 경험과 지식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주장으로 만들어나가면 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은 결국 앞으로 내가 글을 써 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일종의 나의 다짐이며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다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1960년대 영국 시인 테드 휴스(Ted Hughes)는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쓸 수 없는 상태 자체를 시의 소재로 삼아 "생각 여우(The Thought-Fox)"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이 글도 무엇을 쓸지 모르는 상태를 소재로 쓰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나의 글도 조금씩 나아지지라는 희망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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