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나아지기 3화
요즈음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다른 작가분들은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어떤 글이 베스트 글이고 좋아요를 많이 받고 있는 지를 확인하는 작업 중이다. 일종의 시장 조사라고나 할까. 시장 조사를 하다 보니 브런치에는 정말로 뛰어나 작가분들이 많이 있다. 대단한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사소한 일상을 빛나게 하는 작가분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래 이것이 글이지 내 글은 글도 아니네 하는 자기 비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리곤 한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글쓰기이니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대단한 작가님들의 글을 흉내 내서 써 보는 데, 이것이 만만하지 않다. 어찌어찌하여 비슷하게 써 놓은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글 맛이 나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고 설익은 밥 같기도 하고 원재료인 무가 매워서 맛이 나지 않는 무말랭이 같기도 하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고민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유레카 하고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을 만났다. 그렇다.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평소에 까칠하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나에게서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는가. 아무리 글을 쓰는 기술이 뛰어난 작가라도 자신의 글에서 자신을 빼고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만약에 그러한 분이 있다면 그분은 작가라기보다 글을 쓰는 일급 기술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허리는 안녕하신가요' 글을 쓰면서 제목을 붙일 때에 학술적인 문장을 최대한 쓰지 않고 그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담긴 핵심 주장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다. '허리는 안녕하신가요' 브런치 북 1권 9편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댓글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글의 제목에서 작가님의 마음과 철학이 느껴집니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연재한 제목 하나하나에 작가님의 삶이 보이더라고요." 이 댓글을 달아준 독자는 나의 지인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지인이 보기에 나의 글이 나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 번씩 명연기자가 티브이 방송에 나와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중에 많은 연기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자신이 어떠한 작품을 할 때에는 연기할 때만이 아니라 작품을 하는 동안은 일상생활에서도 작품 속의 배역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완전히 배역과 같은 인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선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고 악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악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럼 악한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위한 글을 쓰는 작가는 모두 악한 사람이란 말인가. 그리고 한 작품 안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에는 작가가 선해졌다 악해졌다 해야 되는 건가.
물론 작가가 작품 속의 배역처럼 악한 사람일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작품을 쓰는 동안만큼은 악한 내용을 쓸 때는 악당으로 빙의되어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리얼리티가 뛰어난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글이 작가를 닮게 되기도 하지만 작가가 글을 닮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의 운명이 작가가 쓴 글과 같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글에는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은 작가의 영혼이기도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이때에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는 단순히 글자로 표기되는 이름 석자만을 의미하는 거는 아니라고 본다. 그 이름 안에 들어있는 철학과 사상, 이야기 등과 같은 그 이름에 함축되어 있는 어떤 고유한 의미를 남긴다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 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 이 세상에 희망이 되는 글, 후손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고 싶다.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의 삶이 먼저 그러해야 하겠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나부터 아름다워 지려 노력하여야 하겠다.
이것이 또한 조금 나아지는 방법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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