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캄보디아 NGO 현장활동가의 솔직한 이야기.
<이 글은 캄보디아 NGO 현장활동가로 일한지 2년차에 써두었던 글입니다.>
나의 현재 직업은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는 NGO 현장활동가이다.
NGO에서 일한 지는3년 차, 캄보디아 현장에서 일을 한 지는 2년 차다.
한국 본부와 캄보디아 현장,
어디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냐고 하기엔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냐라는 물음과 같지만,
내가 좀 더 흥미를 느끼는 곳은 바로 현장이 아닐까 싶다.
NGO의 가장 최전선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부딪히며 나 스스로를 깨쳐 나아가는 일, 그리고 가끔 운이 좋다면 그들의 변화를 기쁘게 바라보는 일.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기쁜 일인데 사실 그렇게 쉬이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과 부딪히는 일이 더 많은 곳이 이곳, 현장이다.
캄보디아가 지루해질 무렵의 '그날'
고작 캄보디아에서 1년이 지났을 무렵, 이곳이 슬 지루해질 무렵 페이스북에 읊조렸던 글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요즈음이 딱 그랬는데 , 그럴 때마다 오는 현장은 늘 나에게 활력을 가져다준다.
그게 좋은 의미의 활력이던 고뇌와 인내의 활력이던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캄보디아에 머문 지 1년차. 한국에서 그리 치열하게 빡빡하게 살지 않았던 것 같던 나였는데.. 나도 모르게 함께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일이 진척되지 않을까, 왜 이렇게 늦는 거지 등등의 한국에서의 기준을 그들에게 가져다 대는 내 모습을 만난다.
과연 그들은 우리와 협력을 원하는 게 맞을까? 단지 우리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등등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오늘도 역시 그랬는데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밥을 떠먹이듯 계속 함께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당장의 결단이 필요했다. 물론 이전의 나였다면 당장 욱하며 하지 말자고 했겠지만, 오늘은 관계에 민감하신 지부장님의 말에 따라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논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번뜩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마치 그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 적고 보니 난 참 모자라고 아직도 배울게 많은 인간인데 다행히도 여기 이곳에서 더 배우고 더 낮아질 수 있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싶다. 부끄럽지만 또 깨닫는 하루"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학교를 변경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는 시점에 놓였다.
이미 정한 규칙에 어긋났고, 앞으로의 사업 진전을 위해서라면 좀 더 적극적인 곳과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우리로써도 끌고 나갈 수 없는 일이고,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함부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중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있다. 자칫하면 그들의 반감을 사서 그 지역 내에서 우리 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 가니 또 그런 생각이 뒤집어졌다.
알고 보니 그 학교는 우리와 협력하고 싶어 했지만 담당자가 늘 불참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우리에겐 비협조적인 학교라고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담당자가 오지 않아 교장선생님이 대신해서 왔는데 이미 담당자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담당자를 바꿀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은 더 진행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다시 잘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
역시나 누구나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다.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
이처럼 현장에만 가면 생각들이 시시 때 때로 변한다. 그 매력에 현장이 좋지만 말이다.
처음에 현장에 갔을 때 누구나 겪는 일 중 시간 약속과 관련된 일이 많다.
나 역시도 "왜 이렇게 사람들이 제시간에 오지 않을까? 왜 아무 말도 없이 이 자리에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꽤나 많다. 물론 지금도 오지 않는 이들에게 재촉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답은 그들을 좀 더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처음보다 선생님의 의견 개진이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고, 참석 시간에 늦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불참하는 수는 많이 줄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
늘 나에게 현장은 어려운 곳이고, 가르침의 터전인 곳이다. 아마 10년, 20년이 지나도 어려울 것 같지만.
함부로 이 곳을 속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함께 가야 한다는 말뿐이 아닌 진짜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을 찾는 것 또한 함께해야 한다.
아직도 내가 현장활동가로써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가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본다.
특히, 현장에 가면 사람들과 마주할 때 되도록 생긋생긋 웃거나 친근하게 하려고 하는데 나름 나의 노력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평소에 그렇게 생긋생긋 웃지 않는 나이지만 좀 더 나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최대한 빵끗빵끗 웃음을 지어 보이고, 캄보디아어를 열심히 내뱉는다.
나와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분명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이뻐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하.
사람 사는 세상은 매한가지 이므로 언젠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시겠거니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