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KO의 삶을 통찰하는 시선

P.22 수치심

by RASKO

수치심의 사전적 의미

수치심(羞恥心, Shame)은 부정적인 자기평가(self-evaluation), 어떤 일을 중단하는동기, 고통·노출·불신·무력·무가치의 느낌과 관련되기도 하는 불쾌한 자기의식적 정서(self-conscious emotion)를 말한다. 수치심은 자아와 자존심의 연장에 있는 개념으로, 수치가 되는 행동을 할 경우 느끼는 것이다. 이는 사회 규범에 적응 같은 행동을 촉구하지만, 반면에 지나치게 느낄 경우에는 행동의 위축 등 문제를 낳는다.


만약 세상에 단 둘만 존재한다면 수치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희미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란의 시작에는 수치심이 자리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원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되지 않은 폭력은 자아가 위협받는 순간 촉발되기도 한다.


왜 수치심이 중요하게 작용할까?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때 자기 가치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공개적인 모욕, 자존심이 짓밟히는 경험은 신경계를 위협 상태로 전환시킨다. 그 순간 이성적 판단은 약해지고 감정적 자기방어가 앞선다. 인간은 분노 때문에 폭력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을 지키려 할 때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


우발적 폭력은 보통 감정이 한순간 폭발하며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분노, 당혹감, 공포와 함께 수치심이 작동한다. 특히 수치심은 분노로 빠르게 전환되기 쉽다. 공개된 자리에서 모욕을 당했을 때, 누군가가 자존심을 짓밟았을 때, 자신을 무시하거나 경멸한다고 느끼는 순간 감정은 굴욕에서 분노로, 다시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수치심이 촉매가 되어 우발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은 심리적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은 여러 요인들과 함께 작용한다.


어린아이를 훈육할 때 가능한 한 사람들이 보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혼이 나는 아이는 자신의 잘못보다 먼저 굴욕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반성보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앞설 수도 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서 작용이다. 성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치심은 행동을 위축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과도한 감정 처리로 이어져, 선을 넘었다고 느낀 상대에게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려는 충동을 만들기도 한다. 이미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는 예상하지 못한 불편한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성숙한 사람은 수치심을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 또한 자존심보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에 수치심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배려심이 강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 역시 타인을 낮추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치심을 타인을 굴복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는 종종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내적 결핍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수치심을 준 사람보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 더 큰 파괴성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순간 가볍게 여겨졌던 갈등은 더 이상 가벼운 문제가 아니게 된다.


사람은 본능보다 이성적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 이성을 가장 쉽게 흔드는 감정 중 하나가 수치심이다. 어쩌면 인간이 타인에게 조심해야 할 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의 상처를 남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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