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함께 잠드는 밤-
(1) 잠이 안 올 땐, 주파수를 맞춰보아요
“강석, 김혜영의 싱그르르, 벙그르르, 쇼!”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명절 귀성길 차 안에서, 언제나 귀를 즐겁게 해주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라디오는 정말 매력 있는 친구였다. 지루함을 지워주는 탄산 같은 청량함이, 언제나 뿜어져 나왔다.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던 그해, 98년도에 어머니는 내게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원래는 윤선생 영어교실 듣기 방송을 위한 선물이었는데, 정말 그건 내게 선물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조용히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으므로.
내가 빠져있던 프로그램은 107.7 MHz SBS 파워 FM, 이지훈의 <영스트리트>.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그녀가, 매주 빠짐없이 등장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지훈이 아니다!― 게스트였던 핑클, 그리고 핑클의 성유리.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 라디오는 거의 유일한 ―스타와 팬의― 만남의 창구였다. 그런데 그저 좋아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이 청취의 전부는 아니었다.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은 청취자의 ‘사연’이다. 그저 ‘남일’에 불과한 그런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리도 흥미로웠던지.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나는 키가 부쩍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180cm가 조금 안 된다. 조, 조금 많이 안 된다.
그뿐이 아니다. 공테이프를 사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바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나만의 앨범을 제작하는 일 역시도, 라디오가 주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매일 밤 ―초등학교 6학년에게― 전해지는 가장 큰 위로가 바로 라디오였다. 덕분에 나의 영어 실력은 도무지 자라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형편없는 상태다.
중학생이 되고 소중한 사촌 형님 길이형이 MP3 플레이어를 선물로 사주었다. 소리바다에서 음원을 다운받아 최신곡을 듣는 일은 리어카에서 테이프를 사서 듣는 그것과는 엄연히 느낌이 달랐다. 좀 더, 고급스러웠달까. MP3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덕분에 라디오는 점점 삶에서 멀어졌다. 주변 그 누구도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그건 뭔가, 고급스럽지 않았다.
라디오를 다시 듣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탁상시계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시계엔, 라디오 기능이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때 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 고통은 겪어본 자들만이 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라디오가 해결해주었다.
유독 피곤해서 일찍 잠들고 싶은 여름날이었다. 보통은 11시 반이면 침대에 눕는데, 그보다 30분은 빨리 누웠던 것 같다. 안 피곤해서 잠이 안 오면 그나마 고통은 덜한데, 몸이 고되고 지쳐있는 상황에서도 잠이 오지 않으면 그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한참을 뒤척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여 시계를 보았는데 벌써 잠을 청한 지 거의 한 시간. 자정 직전이었다. 휴, 한숨을 깊게 내쉬고 다시 시계를 내려놓는데 그만, 시계에서 아니 라디오에서 소리가 났다. 우연인 듯 아닌 듯 어떤 버튼이 눌렸던 것. ‘아, 라디오 기능이 있었지.’ 덕분에 호기심 어린 손길은 가만히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멈춘 95.9MHz. DJ는 작사가 김이나,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