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거꾸로 해도 토마토 그리고 탕후루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그러니까 그게 전부 나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 늘 동생은 얘기한다. 알고 보면 나이란 누구나 먹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이를 먹고서부터 달달한 음식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했다. 물론 이것이 공복혈당 수치가 높게 나온 이후부터이긴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건강에 이상이 온다는 의미와 같다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대세를 따라 토마토 탕후루를 만들어보았다. 탕후루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설탕물을 만들어 토마토 위에 흠뻑 적셔주었다. 설탕물은 설탕 2, 물 1의 비율이다. 그냥 이대로 종이컵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면 된다.

그리고 이쑤시개를 꽂은 방울토마토에 잘 녹은 설탕물, 아니 설탕 시럽을 발라준다. 그런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고 15~20분 지나면 우리가 잘 아는 그 토마토 탕후루 완성. 왜 하필 토마토였냐고? 문득 설탕을 뿌려 먹던 그 토마토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보다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 토마토는 그냥 먹는 게 훨씬 더 맛있다. 억지로 부여한 단맛이 없어도 토마토는, 나이 먹은 어른들의 소중한 음식이니까.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어식 이름이 붙은 벌겋고 둥그런 정체 모를 존재로 인해 종종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과일인지 채소인지 모를 이도 저도 아닌 존재는 그 맛도, 아주 모호했다. 단맛이 나면서도 신맛이 났으며, 달지도 않은 게 시지도 않았으니, 어머니 몰래 존재를 무존재화化하기 위하여 순백의 조력자가 내민 까만 손을 덥썩 잡아 버리곤 했다. 설탕을 뿌려 먹으면 토마토도, 꽤 해볼 만한 적수가 되었으니까.

한창 토마토와 다툼을 이어가던 시절, 거울 속엔 얼굴이 까맣고 촌스러운 소년이 서 있었다. 속은 순백색이었길 바라지만, 애석하게도 기억은 과거라는 매서운 조각들로 소망을 짓밟는다. 소년은 입이 험했다. 줄곧 누군가와 다투기 일쑤였다.


“청소 당번이 누구냐, 새치기를 왜 하느냐!”


따위의 논쟁은 주먹다짐으로 이어졌으나, 위대한 심판자는 다행히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고, 주먹다짐이 더한 무언가로 몸집을 불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른들이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렇다. 한쪽만 잘못했을 땐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툼은 사실 아무도 틀리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임에도, 그 시절 철없던 소년은 왜 그리 이기고 싶어 했을까.

어찌 되었든 교무실에 불려가는 건 굉장히 흔한 일상이었는데 ―또 어찌 되었든― 기묘한 것이 그 공간에서만큼은 다툼이란 게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신나고 시원하게 ‘혼이 났을’ 뿐. 역시나 어른은 위대한 존재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길, 꿈꿨을 테다.


어른이 되고 난 뒤로도 늘 토마토의 정체가 궁금하곤 했다. 어른은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고, 그래야 어른이라고, 나름의 마음가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어른 말고, 진짜 어른을 꿈꿨던 거다. 허나 뉴스를 본다거나 직장 생활에 빠져 있다거나 하면 어른은, 결코 다른 점이 없었다. 청소 당번이나 새치기 따위로 다투는 소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은 어른의 하루. 좌우와 남녀와 노인과 청년, 두 동강이 난 지구인들은 매일 같이 서로를 물어 뜯고 있었다. 그렇다고 뉴스를 보지 않는다거나 직장을 때려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삶은, 점점, 메말라갔다.

한계에 다다르고 나서야 내게 무언가가 필요함을 느꼈다. 말라비틀어진 삶을 영위할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 발버둥을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온 힘을 다해 눈알을, 굴리고 또 굴렸다. 그리고 새까만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번쩍이는 무언가가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래, 적! 적이 필요했다. 싸워 이길 적. 당당히 적을 물리치고 승리에 도취하여 다시 삶을 적셔내자! 굴리던 시야에 무엇이든 너그럽게 받아주는 포용의 상징,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엔 너무도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토마토가 머물고 있었으니, ―지지않기 위하여― 우렁차게, 위협적으로, 물, 었, 다!


“넌 과일인 것이냐, 아님 채소인 것이냐!”


토마토는 어떠한 물리적 음성도 뱉지 않았고 결국 오기가 생긴 어른은, 그 시절 소년의 심정으로 녀석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베어 문 이후에야 순백의 조력자, 설탕의 손을 잡지 않았음을 깨달았으나, 이는 다행인 것이었다. 단맛이 나면서도 신맛이 났으며, 달지도 않은 게 시지도 않다는 사실에 소년이 된 어른은, 어른이 된 소년은 입 안 가득 퍼진 토마토의 채즙과도 같은, 진한 눈물 한 방울을 흘려낼 수 있었으니까.


나이를 먹는다고 철이 드는 것은 아니다. 어른인 척, 철없는 다툼을 일삼는 이들에게 벌겋고 둥그런, ―설탕 따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토마토를 건네어주자. 토마토는 과일이자 채소이며, 과일은 아니지만 채소도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 토, 마, 토!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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