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싱싱하게 팔딱팔딱 뛰는 활어회를 즐긴다. 산낙지에서 모든 이야기 종결. 반대로 선어회, 그러니까 숙성한 회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선어회는 상했을 것 같다, 찝찝하다, 이런 오해가 있는 것이다. 생선에 관해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선어회를 제대로 맛보고 나면 거기서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회는, 숙성해야 제맛이 난다. 감칠맛이 아주 일품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들의 사랑처럼 말이다.
생연어를 구매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곤부지메’라 불리는 일본식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맛술과 굵은 소금을 앞뒤로 고루 뿌려주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러는 동안 다시마를 물에 불려주는데, 다시마엔 글루탐산, 알긴산과……. 여하튼 참 좋은 식품이지 않을까! 아, 확실한 건 다시마는 연어의 살을 더욱 탱글탱글하고 쫄깃하게 만들어주기에 이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 연어의 소금기를 깨끗이 씻어낸 뒤 다시마로 연어를 잘 포장해주고 그대로 냉장고에 하루 더 보관한다. 그렇다,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가 지난 뒤 다시마를 걷어냈을 때 한껏 탱탱해진 연어의 살덩이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까꿍’이라는 반가운 감탄사를 내뱉게 될 테니 잘 참고 기다리자.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사랑하는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숙성을 기다리다 갑자기 사랑을? 그래도 괜찮다. 인간은 원래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니까. 우리의 주식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도, 숙성될수록 참맛이 나는 법이다.
연어가 잘 숙성되면 우린 단촛물을 만들어야 한다. 소금, 설탕, 식초를 1:2:3 비율로 잘 섞어준다. 이건 <냉장고를 부탁해> 정호영 셰프의 특급 레시피이므로 반박 시 당신 말도 틀렸을걸? 이 비율을 헷갈리지 않고 완벽하게 기억하는 비법이 있는데, 소금의 ㅗ, 설탕의 ㅓ, 식초의 ㅣ, 이렇게 모음의 순서대로 1:2:3 비율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역시 국어 교사다운 발상. 여하튼 그렇게 단촛물을 잘 버무린 밥 위에 숙성된 연어를 두껍게 썰어 올리면 그토록 기다리던 연어 초밥이 완성된다. 한입에 쏘옥 넣고 연어의 식감을 한껏 즐기며 당신은, 다시 사랑하는 그 사람을 떠올려야만 한다.
한 장수 커플에게 물음을 던졌던 적이 있다. 둘이 연애하면서 가장 좋았던 적이 언제냐고. 그때 그들은 ‘연애하기 전 썸 탈 때’라고 답했다. 그래, 그때야말로 가장 활활 타오르는 그런 때였을 테니. 그리고 한 번 더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별로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둘의 대답은 어땠을까. 절대 No.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연이어 궁금했지만,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절보다 왜 지금이 더 좋은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다 보였으니까. 무르익은 두 사람은 뜨겁진 않아도 은은했으며, 껌딱지처럼 붙어 있지 않아도 매우 가까워 보였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 있었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고 남은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결혼. 내 주변 어르신들은 말로는 결혼을 하라면서 늘 결혼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곤 한다. 심하게는 늘상 집사람 흉보기를 일삼는 그런 지인도 있었다. 나도 결혼이란 걸 하고 싶지만, 이런 소리 저런 소리 그 어떤 소리도 사실 큰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결혼이 아닌, 사랑이니까. 오래도록 익어갈, 숙성되면 될수록 더욱 깊은 맛을 낼 그런 사랑. 유효기간 따윈 없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다.
사랑뿐이겠는가. 구관이 명관이고,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아는 것처럼 모든 관계는 무르익어야 그 참 묘미를 알 수 있다.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세계를 논하지 말고, 조금은 기다릴 줄도 아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아, 물론 과하게 익은 경우를 우린 ‘썩었다’라고 표현하긴 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