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그러니까 이건, 말 그대로다. 난 떡을 싫어하는데, 떡볶이는 좋아한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라고 말할 그대여! 조금만 진정하고,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길. 한국말은 끝까지!
떡볶이란 음식은 떡과 어묵이 메인이지만, 창조 정신과 창의력이 전 세계 상위권인 우리 민족은 새로운 떡볶이를 수시로 개발해냈고 무엇보다 토핑, 그러니까 떡과 어묵 외에 들어갈 부재료들의 변화를 통해 더욱 다채로운 만남을 추구해냈다. 그리고 떡을 싫어하는 민족의 이단아는 떡볶이에서 늘 떡 대신 비엔나소시지와 메추리알, 갖은 채소들만 골라 먹곤 했으니! 토핑들을 떡볶이 소스에 흠뻑 적셔 한입 가득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고추장소스의 맵고 달짝지근한 맛과 그 토핑들의 어우러짐이 참 좋았다. 떡으로도 느낄 수 있지 않냐고? 개인차겠지만 이단아는 떡의 쫄깃함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떡은, 무 無 맛이다. 떡 자체에는 아무런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단아에게 굳이 떡을 먹으라 강요하지 말아줘. 난, 떡이, 싫단 말이야!
특이성을 지닌 지구인은 지구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 세계에서 나만을 위한 떡볶이는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하여 개발된 새로운 요리는 ‘떡 없는 떡볶이’. 떡이 들어있지 않은데 그렇다고 딱히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하니 그냥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홍철 없는 홍철팀도 있는데 뭐, 어때!
비엔나소시지와 메추리알, 파프리카나 양파, 대파 같은 갖은 채소도 좋다. 물론 누군가는 ‘우린 이걸 소시지 야채볶음이라 부르기로 했어요’라 말할 수 있지만, 그 음식은 케찹 베이스인 것과 달리 ‘떡 없는 떡볶이’는 고추장 베이스로 조리되기에 엄연히, 완전히, 분명히 다른 음식이다. 여하튼 떡볶이는 소스의 맛이 참 중요한데 대한민국 떡볶이 1호 명인 김두래 선생님께서는 떡볶이 소스를 만들 때 도라지청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명인이라는 호칭까진 바라지 않았던 나로선 도라지청 대신 편의점에서 파는 식혜나 아침햇살 음료를 이용했다. 그 안엔 액상과당으로 대표되는 여러 당류가 포함되어 있어 아주 간편하게 소스의 맛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음료에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과 간장 따위를 섞고 앞서 준비한 토핑 재료들을 넣은 뒤 한소끔 끓이면 기대하던 그 맛, 떡볶이 소스가 완성된다.
여전히 누군가는 떡이 없는 떡볶이가 가당키나 하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글자들 사이에 던져두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들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제발, 다른 건 틀림이 아님을 알아주면 안 될까? 지금을 살아가는 지구인들은 자꾸만 자신을 지우려고만 한다.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자 억지로 애쓰는 이들이 자꾸만 늘어간단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지구인들의 탓이다. 나와 다른 이를 틀렸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지구인의 못된 습성이 스스로를 향한 화살이 되어 가슴팍에 팍팍 꽂히고 있다.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교사 집단에서 목소리가 꽤 큰 편에 속하는 단체가 하나 있는데,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분명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게 잘못인 건 아니다. 정치란, 옳고 그름이 아닌 ‘성향’이므로. 내 편이 무조건 맞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고 여기는 게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정치의 본질이니까.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참교육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착각한다. 한번 그들에게 ‘다른’ 의견을 냈다가 아주 호되게 당하고야 말았다. 다른 목소리를 틀렸다고 치부하는 그들 앞에선 항상 목청을 숨겨야만 했는데, 나도 그들과 같은 척하며 나 자신을 숨겼어야 했는데 말이다. 무섭고 두려웠기에, 계속하여 망설였었다. 떡 없는 떡볶이를 외쳐도 될 것인가에 관하여!
나는 지금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고 있다. 물론 세계를 존속하는 보편적인 가치들을 따르는 건 지구인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이겠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어두운 소식들만 들려오는 아픈 요즘이라지만, 그렇다고 그 어둠 속에 당신마저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BTS나 뉴진스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신의 취향이라면, 90년대 감성 록 발라드도 살아있는 음악이니까. SNS에 해외여행을 인증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의 취향이라면, 집돌이와 집순이의 하루도 충분히 평화로운 안식이니까. 그건,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것이다! 나와 당신의 행복을 위하여 우린 맘껏 사랑을 나누고, 우리가 하고픈 것들을 맘껏 즐기고, 우리가 먹고픈 것들만 먹어도 괜찮다고,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당당히 외치려 한다. 난, 떡이, 싫단 말이야!
그나저나 말이다. 지구인은 누구나 요리를 해야 한다.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그 맛을 구현할 수 있는 건 바로 나, 나밖에 없다는 걸 왜 지구인들은 모르고 있을까. 누구나 요리사가 될 순 없지만, 누구나 요리를 할 수는 있는데 말이다.
물론 난, 나보다 소중한 당신의 입맛을 더 존중할 것이다. 당신이 떡 없는 떡볶이를 넘어 김치 없는 김치찌개, 닭이 없는 닭갈비를 원한다 해도 나는 늘 당신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즐길 것이다. 모두가 우릴 틀렸다고 말해도 우린, 계속 그렇게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