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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Jun 19. 2022

그냥저냥 내 인생, 서울은 로망의 도시일 뿐

얼마 전 오래간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의 시골은 비가 오고 우중충하던데 오전의 서울은 밝은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풋 이렇게 날씨마저 차별하는 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남들이 뭐라 하건 서울에 오면 일단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 누군 서울이 뭐가 좋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엔 정답이 없듯 지금의 내겐 그렇다는 것이다. 매연, 도로체증 및 지하철 붐빔 같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미국 몬테나 같은 시골 거주자도 뉴욕의 한 복판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시골 전원풍경 좋은 것도 그냥 하루 이틀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질 때가 많다. 내가 사는 집 근처도 마냥 조용하기만 해서 매일 펜션에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다니는 직장이 위치한 곳도 주변이 온통 논밭이다. 뭐 서울 사는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지만 주변 논밭 뷰를 평생 보고 사는 촌사람 입장에선 서울은 로망일 수밖에. 서울의 부정적인 면은 나 같은 공상 주의자의 세상에선 별 의미가 없다.


 해질녁 시골 우리집 전경


주말이 되면 딱히 갈 곳이 없다. 아무리 소문난 곳도 일주일 안에 섭렵하게 된다. 퇴근 후 자기 계발하기 위해 다닐 학원도 없다. 먹거리를 살 마트에서도 물건이 다양하지 않다. 대인기피증이 있다 보니 돌아다니다 아는 사람 만날까 봐 것도 걱정이다. 미세먼지는 시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 분위기는 마치 커피 카페인을 주입한 후 느껴지는 업그레이드된 기분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큰애가 안 쓴다고 준 쿠폰을 들고 말차 라테 한잔 해야겠다고 서둘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자신 있게 바코드를 찍었지만

" 아, 이거 이미 사용한 쿠폰이네요..."

"헉,, 네?" 앗 며칠 전 남편 폰에서 억지로 갈취한 쿠폰이 이미 딸애한테 준 쿠폰이었다. '어쩔' 그냥 내 돈으로 말차 라테를 주문하고 매장 내 전시된 텀블러 등을 구경했다. 새롭고 멋진 디자인의 물건들이 얼른 픽업해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듯 나의 쇼핑 욕구를 깨우기 시작했다. 여름 한정판으로 나온듯한 야자수 그림이 그려진 노란색의 텀블러를 구입했다. 그 옆에 주황색 뚜껑의 용량이 더 큰 텀블러도 탐났지만 금액이 상당하다. 그렇게 보다가 와르르르 텀블러 두 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휴, 나이 드니 행동도 굼뜨고 실수만 하는군 ' 혼자 생각했다. 누군가 보고 있겠지만 의식하지 않은 채 얼른 제자리로 갖다 놓고 그래도 그중 한 개는 샀으니 당당하게 매장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아득한 상념과 우울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평생 도시 생활을 그리워하고 살았지만 시골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 아등바등하며 그런저런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들며 마음이 휑해졌다.


서울 살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뭐 쇼핑센터 등등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뭔가를 배우고 일도 하는 그런 풍족하고 여유 있는 도시 라이프를 평생 꿈꿨다. 하지만 그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꿈이었나.  50 넘어보니 막바지로 가는 인생의 전체 아우트라인이 보이며 과거의 기대는 부질없었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서울에 가서 성공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10대 때 했더라면 열심히 공부를 했을 것이고 현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별반 다를 거 없을 거 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지금 직장 다니며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단지 그걸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것에 힘들게 집중하기 때문일까. 지금 와 이런저런 후회도 아무 소용없는 짓이지만 자꾸만 과거의 상념을 되새김질하며 회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퇴직 후 도시에 살면 매주 그런 장소 투어 다니면서 커피 마시면 좋겠다 는데 이 마저도 이젠 안갯속이다. 퇴직할 즈음에는 의욕도 기력도 다 떨어지고 이런저런 장애물도 많을 것이다. 남은 인생이 맥시멈 50년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두려움도 느낀다. 노화로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날 때 몸이 반응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정말 이건 50이라는 나이를 넘겨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인간의 삶이란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는 그저 고통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게 딱 50대 삶 인가 싶다. 


오후에 시골로 내려가는 차 시간을 3시간 남겨두고 백화점 지하 빵집 메나주리에서 치아바타를 사고, 폴 바셋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쉑쉑 버거까지 먹고 있으니 도시생활에 굶주렸던 촌사람의 라이프가 조금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하지만 시골행 고속버스를 타는 순간 신데렐라의 마차가 호박으로 바뀌듯 희미해지는 카페인의 성능과 함께 서울 이방인의 삶도 끝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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