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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Nov 19. 2020

오늘에 충실하라, 헛제삿밥

어제의 나를 장사지낸다

긴 연휴 이후 처음으로 맞는 평일 오전. 첫째는 학교로, 둘째는 유치원으로, 재택근무인 남편은 컴퓨터방으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 시간. 연휴동안 살림을 미뤄둔 탓에 집은 엉망이다. 채워져야 할 곳은 비어있고 비워져야 할 곳은 꽉 차 있다. 텅 빈 수건장과 서랍장, 꽉 찬 빨래바구니와 쓰레기통, 냉장고 속 오래 된 식재료들까지...집안 곳곳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을 외면한 채 책상 앞으로 향한다.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나 달콤한지. 능률은 또 어찌나 좋은지. 글이 술술 풀린다. 이 느낌 이대로 쭈욱 탈고까지 해버리고 싶은 마음에 오전시간을 불태운다. 쌓아둔 빨래는 쉰내를 더해가고 냉장고 속 채소들은 시들어가겠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어느 새 시계는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점심에 대한 부담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초조함에 다급해지던 마음에 슬그머니 짜증이 인다.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닌데. 나 혼자라면 거르고 말텐데. 저 방에서 재택근무 중인 남편을 생각하면 차마 밥때를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꼬박꼬박 직장에 출근하고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오는 우리집 유일의 경제활동인구다. 나 또한 가끔 글을 써서 돈을 벌지만 그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 남편이 상황상 집에서 일을 하고 있고, 때가 되어 점심을 챙겨주는 것은 마땅한 나의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 절정으로 치닫는 글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란 너무 어렵다. 자꾸만 치트키(cheat key)를 쓰고 싶어진다. 라면을 끓여먹자고 할까? 배달음식을 시켜먹자고 할까? 어떤 제안을 해도 남편은 그러자고 할 것이다.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글을 쓴답시고 주부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게 정 염치가 없다면 '점심은 시켜먹을까?' 톡 하나 보내면 그만이다.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흔쾌히 따를 사람임을 나는 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지금에 충실한 모든 이들을 위해

만약 내가 전업작가라면, 작가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나는 마음 편히 배달음식으로 상을 차릴 것이다. 각자 경제활동에 매진하고 있을 때라면야 서로가 서로의 끼니를 챙겨줄 의무도 여유도 없을 것이기에.


내 꿈은 작가다. 꿈을 이루기 위해 틈나는대로 글을 쓰지만 어디까지나 '틈나는대로'다. 주부의 일을 소화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쓴다. 요즘 말로 하자면 본캐(본캐릭터)는 '주부'요, 부캐(부캐릭터)는 '작가지망생'인 셈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이미 '작가'라도 된 양, "엄마도 일 하잖아. 글 쓰는 일."이라고 저들끼리 조잘대지만 어쨌거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나는 본캐에 충실해야 한다. 


본업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은 많다. 글도 쓰고 싶고, 달리기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하나같이 건실한 취미다. 그러나 살림을 미뤄놓고 취미에 매진하는 순간, 더이상 건실한 것이 아니게 되고 만다. 당장 오늘 아이들 몸 닦을 수건부터 동이 날테고,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토해내기 시작할 테니까.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게 많을 게다. 한때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새롭고 의미있고 돈 안 되는 일을 벌이기 좋아하던 사람. 그러나 아이들이 자랄수록 늘어가는 식비와 생활비,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그는 꾸준히 돈 되는 일에 매진해왔다. 앞으로도 10년은 더 가장으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10년 간의 대학원 시절부터 취업 이후 10년까지, 근 20년을 그는 '해야 하는 일'만을 이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때 무수히 많던 위시리스트는 모두 증발해버리고 "생계걱정없이, 시간걱정없이 늘어지게 일주일만 지내보고 싶다"는 보잘 것 없는 소망만이 남았다. 이제는 그마저도 소망이 되지 못한다. 그 일주일간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던 남편은,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어서 고민이란다. 사고 싶은 게 있다는 건 건강한 거라며 나의 마르지 않는 '쇼핑리스트'를 부러워한다. 


그는 왜 욕구가 메마른 40대 초반의 흔한 아저씨가 되고 말았나. 서글퍼졌다. 회사원, 남편, 아빠, 아들 말고. 사람만나는 것과 사진찍기를 좋아하고 자연을 경외하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던 '장작가(남편의 닉네임)'의 삶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그에게 하루의 낙은 저녁메뉴를 찍어 SNS에 올리는 것 뿐인가?


내가 부캐를 채우기 위해 본캐를 등한시할 때, 그는 본캐를 유지하느라 부캐를 잃어갔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들 도무지 떳떳할 것 같지 않다. 소중한 가치, 소중한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꿈은 탐욕이 아니던가? 나 하나 잘 되자고 그들에게 희생을 요할 수는 없다. 결심했다. 일단 나의 일을 하자. 본업을 이행하고 남는 시간을 꿈에 투자하자. 생각이 여기까지 치달았을 때,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채소칸을 열어보니 연휴 전에 사다놓은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이 그대로 들어앉아있다. 사실은 열어보기 전에도 그것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조용히 상해가기를 바라며 마음에서 외면했을 뿐. 상했을거야. 상했겠지. 상했어야 하는데. 꺼내서 냄새를 맡아보니 어라? 쉰내가 느껴지지 않는다! 와아...반가운데 반갑지 않은 이 기분은 뭘까. 이렇게 된 거 조물조물 나물을 무칠 수밖에.


남편이 좋아하는 나물비빔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비빔밥엔 필히, 숟가락을 적실 국물이 있어야 한다. 김치냉장고를 뒤져보니 자투리 무가 튀어나온다. 냉동실에 쟁여둔 멸치육수와 소고기국거리도 꺼냈다. 배달음식을 시켰으면 어쩔 뻔 했나. 살뜰하게 들어찬 각종 식재료가 이렇게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데.


볶고, 무치고, 끓이고, 담아낸다. 나물에 탕국. 차려놓고 보니 제삿밥이다. 우리집은 제사가 없고, 더군다나 오늘은 명절도 아니니 '헛'제삿밥이다. 시계는 정확히 열두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남편을 불렀다. 식탁에 나와앉은 남편의 입이 함박만해진다. 큰 대접에 나물을 크게 한 젓가락씩 넣고 조선간장 반숟갈, 탕국 두 숟갈을 넣고 가볍게 비빈다.


모든 성공 이전에 당장 오늘의 끼니를 성공시키는 것이 나의 본업이며 의무다. 오늘을 오늘로 살았을 때, 당당하게 나의 꿈을, 내일의 성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본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헛제삿밥을 크게 한 술 떴다. 나태한 과거의 나를 장사지낸다, 치얼쓰.

지금에 충실한 모든 이들을 위해지금에 충실한 모든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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