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제목에 '지역감정'이라는 다소 민감한 키워드를 넣은 것은 단순히 이목을 끌고자 하는 얄팍한 의도가 맞다. 이것은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우리 부부의 떡국레시피다. 굳이 이야기로 분류하자면 레시피가 자리잡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랄까.
남편은 경상도 남자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스물세살까지 순도 100%의 경상도 토박이었다고 한다. 스물네살부터 이십년 가까이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그 말투라든가 사고방식이 조금은 희석되었다지만 여전히 순도 85%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어엿한 경상도 사람이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그 잃어버린 15%가 매우 크게 느껴지는 모양인지 종종 본인이 상당 부분 서울화(seoulization)되었음을 주장한다. 비록 자신의 서울화를 주장할 때조차 묻어나는 강한 경상도 억양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그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게 하지만.
"내 사투리 별로 안 쓴↘다↗"
"내 그래도 마~이 고↗칫다"
"내가 무슨 경상도 말투고. 마 됐다."
사투리 별로 안 쓰고 마이 고친 경상도 말투는 마 이렇다.
나는 전라도 여자다. 스무살까지 순천 토박이었다. 허나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다가 청소년기부터 쭉 전라도에 정착해 살았던 엄마의 영향으로 경상도 말투가 상당히 익숙하다. 가끔은 전라도 말투와 경상도 말투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엄마가 두 지역의 말투를 마구 섞어서 썼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라도에서 전라도사람들과 어울려 20년을 살았기에 나는 전라도 말투를 훨씬 더 많이,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대학입학 후, 수도권 출신의 친구들은 내가 사투리를 많이 안 쓰는 편이라고들 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순천은 억양이 별로 안 세서...근디 느그 밥은 먹었냐↘안 먹었으믄 학식 먹게 같이 갈라냐↘"
의문형과 청유형에서 구수하게 내려가는 전라도의 악센트는 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자친구였던 그가 말했다. 연고가 없는 대전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도 몰랐고 서울에 거주하는 여덟살 어린 전라도 여자랑 사귀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상상도 못했다고. 이렇듯 우리의 연애에는 수많은 키워드가 존재했다. 장거리연애. 여덟살차이. 경상도남자. 전라도여자. 그 수많은 키워드 중에서 그는 <전라도 여자>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었다.
한때 그에게는 전라도 여사친이 있었다. 한번은 각자 고향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꼬막장, 보리굴비, 장어구이 따위를 한참 신나게 늘어놓고 있을 때 그는 명절이나 제사 때 부쳐먹던 <배추전>을 떠올렸다. 떠올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입에 올린 순간, 배추가 무슨 맛이 나느냐,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명절에 배추 따위를 부쳐먹느냐며 경악하던 친구의 반응은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나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엄마도 배추로 전 부쳐주는데?"
엄마가 종종 부쳐주던 배추전이 경상도 음식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배추전으로 맺어진 연대감 때문인지 우리는 어찌어찌 결혼까지 했다. 결혼식 다음날은 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다섯시에 집에서 나서야 했는데 전날밤 그는 내일 아침밥을 집에서 먹고 출발하자고 했다. 그때 나는 미용실에서 신부머리를 만든다고 머리 곳곳에 잔뜩 꽂아놓은 핀을 빼느라 그 말의 의미도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되는대로 주억거렸다. 새벽 네시반쯤 밥 먹자는 소리에 비몽사몽 일어나보니 진짜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떡국,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두 그릇엔 고명까지 소복하게 올라가 있었다. 파, 김, 달걀지단, 고기 그리고...두부? 떡국 속의 두부가 낯설다는 걸 채 인지할 새도 없이 비행기시간에 쫓겨 들이마신 그날의 떡국은 어, 참 오래도록 따뜻했다. 뱃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따뜻한 기운이 새벽의 찬 공기를 이기고도 남았다.
함께 살면서 남편은 참 많은 떡국을 끓여냈다. 그렇다는 건 달걀지단도 그만큼 많이 부쳤다는 이야기고 김도 그만큼 많이 썰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고기와 두부도.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네 집에서는 떡국에 두부를 넣는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국간장을 넣고 조린 고기와 두부를 고명으로 얹는데, 남편은 이를 '꾸미'라고 불렀다. 남편이 끓여주는 떡국을 하도 많이 얻어먹다 보니 이제 나도 <경상도식 떡국> 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정작 <전라도식 떡국>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맛의 고장이라는 남도에 살며 굴떡국, 닭떡국은 물론이요, 닭떡국의 원조라는 꿩떡국까지 먹어봤지만 그 곳이 내 집인 고로, 내 엄마가 항상 계신 까닭에 끓여주는 걸 받아먹기나 했지 직접 끓여볼 생각도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집 떡국 레시피는 <경상도식>으로 정해졌다.
경상도식 떡국은 이렇게 끓인다. 대부분의 국물음식이 그렇겠지만 육수가 중요하다. 육수가 반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육수를 소홀히 하면 음식맛을 망친다. 반대로 육수가 너무 과해도 음식맛을 해친다. 경상도식 떡국을 위한 육수는 오로지 멸치와 다시마로만 낸다. 파뿌리는 넣어도 좋고 안 넣어도 좋다. 이 외에는 일절 넣지 않는다. 맛을 내기 위해 건새우, 건표고, 무, 디포리 따위의 재료를 추가하면 떡국 고유의 맛이 사라져버린다. 멸치육수와 떡에서 우러나오는 진득한 쌀뜨물이 아무런 방해꾼 없이 만나야만 비로소 담담하게 구수한 떡국의 맛을 자아낸다.
또 하나 경상도식 떡국의 포인트는 바로 고기와 두부로 만든 꾸미에 있다. 두부는 깍둑썰기로 써는데, 두부가 무른 고로 깍둑 썬다 해도 깍둑 소리는 나지 않겠지만 개의치말고 썰었을 때의 모양만 참고하도록 하자. 깍둑 썬 두부와 잘게 간 소고기를 한데 넣고 국간장을 넉넉히 5-10스푼 정도 붓는다. 두부가 으깨지지 않도록 살살 뒤적이며 끓이듯이 볶는다. 함께 올라갈 달걀지단과 김도 길게 썰어 준비해둔다.
육수와 고명이 준비되었으면 이제 다 끝났다. 물에 담궈 말랑해진 떡국떡을 건져 육수에 넣고 끓이다가 떡국떡이 위로 떠오르면 쫑쫑 썬 파를 넣고 각자 대접에 담아낸다. 그 위에 준비해둔 고명을 얹으면 완성이다. 이렇듯 떡국은 육수와 고명만 미리 준비해두면 많은 손님을 치를 때도, 급하게 끼니를 챙길 때도 적격이다. 육수에 떡 넣고 끓여 사람수대로 담은 뒤 고명만 얹으면 되니 그야말로 손쉬운 홈메이드 레토르트 식품이라 할 수 있겠다.
신혼여행 가던 날 새벽에 남편이 끓여주었던 떡국에도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다는 걸 나중에 내가 끓이면서 알게 됐다. 그날 먹었던 떡국의 따뜻함은 그날의 여행길 뿐 아니라 그와 함께 걸어온 지난 8년 간의 인생길에도 내내 스며들어 있다. 함께 살아갈 날의 첫끼를 위해 미리서부터 정성과 시간을 들인 그 마음에 두고두고 고마움을 느낀다. 그 고마움을 담아 전라도여자는 앞으로 남은 길을 걷는 동안에도 경상도 남자의 레시피대로 떡국을 끓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