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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13. 2019

스타빡스가 하자고 절대 안 해!!!

채식메뉴를 개발하다 빡친 사연

스타*스가 하자고 절대 안 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프랜차이즈에서 카페 메뉴 창업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과일 스무디와 로푸드 디저트를 의뢰하였다. 로푸드가 대중적인 시장에 소개되는 것도 좋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메뉴 개발 팀장이 로푸드 요리수업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제품을 개발하게 되었다. 담당자의 요구는 까다로웠다. 자연주의 콘셉트 카페라 야채, 과일 원재료를 중심으로 시럽과 첨가제 없이 만들되 최대한 대중적인 맛으로 만들기를 부탁하였다.


내가 이 일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열심히 연구해 만들어 놓으면 색도 예뻐야 되고 맛도 좋아야 하는 이유로 매번 퇴짜를 맞았다. 8년 동안 한 일이라 자신 있다고 생각한 작업이 좀처럼 완성되지 않았다. 이런 재료는 사용하면 안 되고 저런 재료는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둥의 자잘한 요구와 자연주의 콘셉트 때문에 어떤 첨가제를 사용해서는 안되다는 룰이 적용되어 기존의 내가 하던 방법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마지막 테스트 날까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담당자가 자신과 같이 해보자 하여 아침부터 사용될 재료 등을 모두 손질해 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담당자는 들고 온 꿀로 여태 끙끙대며 맛을 잡기 애썼던 레시피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채꿀을 넣으니 모든 레시피가 맛있어졌다. 조미료가 따로 없었다. 약간 허망하면서도 당황한 나는 처음부터 꿀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건데... 라며 말을 흐리니 개발자의 창의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말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한다. 




혼자 100%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노력했던 레시피가 어찌어찌 완성된 거 같아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담당자는 수시로 음식을 만들어 보내라고 퀵을 보냈다. ‘중국 바이어들이 와서 맛을 보여줘야 한다. 위의 토핑 연구를 해야 하니 같이 다시 만들어 보자. 사진 촬영 전 테스트를 해야 하니 다음날 아침에 퀵을 보내겠다.’등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며 음식을 시간 내에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들어가는 종류가 많고 공정이 간단하지 않아 한번 만들어 보내고 정리까지 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설거지를 하면서 갑자기 화가 치민다. 내가 왜 이 돈 받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노동을 하고 있지? 레시피가 다 정리되었는데 자신들이 필요하면 직접 만들면 되지 왜 자꾸 이걸 나에게 시키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되는 거지? 등등 한번 시작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에 참지 못하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과 감정의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노동의 강도가 세다. 마치 착취당하는 기분이다 왜 나는 자꾸 휘둘리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등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 내가 할 일이 어디까지인지 따져 물었다. 담당자는 나의 말에 굉장히 당황해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이없어했다. 담당자는 계약서에 나온 데로 한 것뿐이고 최선의 상품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고치고 반복하고 만나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며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한다. ‘나를 몇 번만났냐? 다른 사람은 30번도 넘게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돈이 적다고 이러시는 거냐? 적은 건 이해한다 알고 있다 한 가지 상품 계발에 75만 원이면 적은 비용인지는 본인도 안다고 말하며 마지막 일격을 했다.


"자연음식으로 메뉴 계발을 하는 사람이 좋은 마음과 보람된 마음으로 일을 해야지 돈을 생각하면 우리랑 함께 일할 수 없다.
이제 뭐 부담스러워서 일을 할 수 있겠냐?" 


자신은 도와줄 필요도 없는데 레시피 작업도 도와줬고 많은 부분이 당신 일이며 내가 할 일 아니었지만 함께했다. 하시기 싫으면 하지 마라!라고 딱 잘라 말한다. 통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오히려 쩔쩔매는 사람은 내가 되어 있다. 



이번 해프닝을 겪으면서 사실 나는 타자에 의해 구속되어 그에 맞추어 일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갑, 을 관계에 있는 기업과 하청 업자의 권력구조를 어렴풋하게 알게 되기도 했다. 이미 완성된 레시피가 나와서 더 이상 내가 없어도 그만인 이 상황에서 ‘노동착취’라는 말을 썼다가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란 말을 1분의 망설임도 없이 듣게 되었다. 물론 내가 좀 더 감정을 배제하고 논리적으로 유하게 말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극히 감정적인 나는 억울하게도 고생은 고생데로 하고 마무리도 못하고 직업의식 없는 사람, 속물인 사람,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속이 계속 쓰려 밥도 안 넘어간다. 회사 직원도 아니고 계약금 75만 원으로 모든 것을 좋은 마음으로 시간, 노동, 신념까지 이 회사에게 바쳐는 게 정당한가? 에 대해 계속 곱씹는다.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에 [카페 메뉴 개발비]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눈에 띄는 글이 몇 개 있어 빨리 클릭했다.


 [질문]:저는 카페에서 일을 합니다. 일 년에 4번 시즌마다 메뉴 계발을 시킵니다 창의력이 없다며 쓴소리를 들으면서 고생하여 계발한 메뉴들이 신제품으로 출시되어도 월급이 오르거나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답변 1] 저희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프로젝트 공모전을 하는데 1등 하면 카톡으로 기프트콘을 줍니다.
[답변 2] 음료 한잔 팔 때마다 1% 주는 곳도 있어요.
[답변 3] 저는 10년 차 파티시에입니다 400만 원에 10개 메뉴 계약하고 작업하는데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1년 차 때 선배들에게 당했던 것처럼 소리 지르고 무시하는 등 갑질이 너무 심해서 하다가 때려치우고 마무리 못했네요... 

   몇 개 읽고 나니 오히려 속이 뒤집어지는 글만 줄줄이 나온다. 




다음날 전화로 감정적으로 말해서 너무 죄송하다. 남은 일정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담장자는 나에게 할 말 다하셨다며 물은 뒤, 재료비는 실비로 지급하고 지금까지 작업은 수고비조로 계약한 금액의 50%를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자고 통보한다. 마음속으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꾹 참는다. 한 달 전 이 일을 맡아 기뻐할 때 같이 일하는 동료가 한 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그런 일은 스타*스가 하자고 해도 절대 하면 안 돼!! 후회해!!! 내 말 들어~’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되어 쓴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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