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29. 2019

“수강생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싶시오."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쌤을 바라는 이들은 아직도 많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요리를 가르치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질문한다. 나는 계속 힘든 거 같은데 그래도 최고로 힘들 때가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선 건강, 채식요리를 하다 보니 재료의 한계가 많다. 육류든 조미료든 뭐든지 사용하여 맛과 풍미를 내는 일반 요리와 비교하기가 힘들다. 기껏 끙끙대며 노력하여 만든 요리에 ‘음... 건강한 맛이네. 먹을 만하네.’라는 평을 들을 때는 실패한 장사꾼 같이 마음이 참담하다. 또 매번 신선한 재료를 꼼꼼히 따져가며 장을 보는 것도 힘들다. 쿠킹 클래스라 말하면서 요리를 하는 것도 긴장의 연속인 데다가 아름답게 테이블을 세팅해서 멋지게 사진을 찍어 데야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시식할 때 수강생의 반응을 기다는 것은 시집가서 첫 식사를 시댁 어른들께 차려주는 것만큼 초조하고 눈치가 보인다.


하나하나 나열해 보니 힘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대상을 줄만한 지점을 찾아야 될 거 같아 열심히 생각해보니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은 늘 새로운 수강생을 모집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채식요리를 배우는 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직, 간접적인 질문과 상담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요지는 건강 때문에 채식을 배우려 한다. 상당수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데 나처럼 이렇게 채식요리를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또 차후에 꼭 채식 디저트 카페를 창업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자신에 의도를 이루려면 수강하는 것이 맞는 거냐며 조언을 구한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때 나는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정확히 이런 일을 왜 하고 살고픈 지 이유를 잘 말하진 못한다. 그냥 회사가 적성에 안 맞고 특히 마냥 건강음식들이 좋단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말한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나 역시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회사생활을 하였고 그러다가 몸이 아파 배우게 된 매력적인 채식요리를 꾸준히 해 먹다 보니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살거라 상상도 못 했고 나 역시 지금도 매일 주방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살고 싶다며 채식 요리를 배우지만 정말로 하루 종일 먹을거리만 생각하고 손에는 물기가 마를 날 없는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만 할 수 있을까? 채식요리라 야채, 과일, 곡식들 사고 나를 땐 너무 무겁고 재료 관리와 손질이 어렵다. 불을 가하지 않는 요리지만 야채, 과일을 손질하다 보면 하루 종일 손이 퉁퉁 붓고 거칠다. 맛있게 조리하는 것도 먹음직하게 세팅하는 것도 허투루 할 수없어 늘 예쁜 그릇을 준비하고 꽃장식을 해야 한다. 포토그래퍼 뺨치게 작품사진을 찍어 포토샵으로 편집해 sns로 실시간 업로드로 마무리한다. 이렇다 보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푸드스타일, 꽃꽂이, 사진, 포토샵까지 능숙해야 한다. 이게 끝이면 그나마 할 만하다. 위의 작업으로 난리가 난 주방은 6.25 전쟁 피난처 못지않게 폭격을 맞은 거 같다. 준비할 때만큼 더 강도 높은 노동은 오늘 이 시간을 흐뭇해하며 떠나는 수강생 뒤로 남겨질 내 몫이 된다.



이런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사실 나는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일이다. 하지만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관료적인 조직 속에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내 신념과 의지 그리고 나름대로의 철학이 관여할 부분이 많다는 차이점은 있다. 나는 그냥 단순히 요리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요리 시간에 책도 읽고 인문학 강사도 초청하고 동의보감도 공부하고 글도 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관성에 빠지지 않고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위해 애쓰면서 하고 있다. 이 부단한 노력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 거 같기도 하다. 어떤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일부러 시간 내 상담 온 사람들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구구절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나는 그분들의 상황을 귀 기울여 듣고 조언해주려 노력한다. 이 순간이 나의 가장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순간이다. 일단, 현재 직업이 있는 분들은 쉽게 그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차근차근 수업을 들으면서 자신의 식단과 건강이 정말 달라지는 경험이 우선이다 말한다. 백수이거나 벌써 계획 중인 분들은 채식 관련된 일의 상업적인 구조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며 대중적인 사업이 아닌 극소수를 대상으로 경쟁하는 치열한 세계라 알려준다.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나 역시도 매달 새로운 수강생 모으는 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말은 꾹 삼킨다.


채식요리 알려주는 곳이 맞냐며 오늘도 약간 머뭇거리는 전화가 온다. 이것저것 교육과정과 비용에 대해 질문하고 답해준다. 마지막으로 6주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나면 어디서, 어떻게 일 할 수 있는지, 직업 알선을 해주는지 물어본다. 수강료로 요리 50~60여 개 레시피를 제공하고 가르쳐주고 공부하고 책 읽고 에세이까지 쓰는데 직업까지 구해주길 바란다. 마치 스카이캐슬에 김주영처럼

 “수강생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십시오. 원하는 것을 모두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요구하는 듯하다. 지금 하고 있는 내 일이 정말이지 힘든 일이란 걸 또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전 11화 스타빡스가 하자고 절대 안 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