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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12. 2019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대신 과일 주스

채식으로 치유되는 일상

은주와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 나이도 같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초보 맘인 점도 비슷해 우리는 다른 학인들 보다 특별히 더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주제가 딱히 없는 글쓰기를  늘 육아문제, 남편 욕,  워킹맘의 애환 등 주제도 비슷한 것으로 쓰곤 했다. 


최근 은주는 둘째를 임신했다가 유산을 해서 몸을 추스르기 위한 병가 중이었다. 첫째 아이는 같은 아파트 1층에 사는 친정 엄마가 봐준다. 큰 일을 겪어 병가 중이지만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힘드실 친정엄마에게 미안해 아들을 데리고 나를 만나러 창동에서 합정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병색이 있어 보이는 친구 옆에 아이는 아토피가 등과 팔다리는 물론 얼굴까지 번져 바람머리가 잘 어울렸던 머리카락이 빡빡이가 되어 있었다. 푸른색으로 천연 염색한 보기 드문 옷까지 입고 나타나니 아토피만 없었다면 도시에 내려온 귀여운 동자승 같이 보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둘째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친구 부부는 은근히 둘째를 기다리고 준비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워킹맘이었고 남편은 늘 바빴다. 거기다가 3살 배기 아들은 잠시도 엄마를 쉬게 하지 않는다. 은주는 늘 주말마다 아이를 위해 열심히 놀아주었고 아토피가 있어 세심하게 돌봐야 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주말에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지 않자 아이를 데리고 미술 전시회를 나간 게 화근이었다. 할머니와 집에서만 놀다가 오랜만에 엄마랑 큰 장소에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너무 신이 났다. 친구는 아이와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아주다가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다. 



나에게 소식을 전하며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는다. 첫째 아이가 아직 어리고 일도 하고 있는 임신한 여자의 하루가 어떤지 겪어보지 않는 나도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둘째에 대한 태교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남편이 주말에 아이와 재밌게 놀아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핸드폰을 보면서 저녁밥을 먹지 않고 자신이 아플 때 옆에서 진심으로 걱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떨군다.


은주의 손을 잡고 아이와 함께 내가 일하는 쿠킹 스튜디오에 왔다. 친구와 아이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우선 아이는 아토피가 심하니 밀가루, 우유, 계란, 버터가 들어있으면 좋지 않다. 밀가루의 글루텐 단백질과 유제품 단백질이 제대로 소화 흡수가 안되면 폐와 장에서 독으로 판단해 이를 빨리 피부로 빼려는 성질이 아토피로 많이 발현된다. 그래서 직접 햅살로 빻아온 쌀가루와 아토피에 좋은 레몬즙을 이용한 레몬 쌀쿠키를 만들어 주었다. 친구는 지금 기분이 가라앉아 있고 유산을 하였으니 세르토닌 분비에 좋은 각종 베리류 과일과 자궁을 보호하는 석류와 생강, 그리고 호두를 이용한 “핑크레이디 스무디”(친구를 위해 즉석 해서 지어낸 이름)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쿠킹스튜디오의 수강생은 임신을 원하지만 잘되지 않아 식단을 바꾸고 싶어 찾아오는 분들과 아이들이 아토피가 너무 심해 직접 간식을 만들어 주려고 찾아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여성의 자궁과 아이들의 폐, 대장이 먹는 음식과의 영향이 아주 밀접한 거 같다. 조금만 생활습관을 바뀌어도 금세 나빠졌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임신이 잘 안돼서 온 많은 분들이 채식요리수업  6주기간 동안에 식습관을 고쳐가는 도중에 임신이 된 기적 같은 경우도 많았다.  그녀들의 실천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기본이 되는 과일 배합법을 알면 된다. 아침에 베이컨과 빵 대신 그린 스무디(바나나. 시금치. 케일. 코코넛워터)를 갈아먹고  생채식 요리를 하루에 한 메뉴씩 식사시간에 곁들여 먹었다. 단, 반드시 남편과 함께해야 효과가 있다.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고민인 분들은 우선 유제품을 끊었다. (유제품에는 우유, 계란, 치즈, 버터가 포함된다) 이렇게 유제품을 끊게 되면 간식의 제약이 크다. 거의 모든 아이들 간식에는 유제품이 들어가고 시중에 파는 채식 디저트나 자연간식들이 맛이 너무 건강하여?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밀가루 대신 직접 빻은 이유식 쌀가루와 100% 과일즙으로 만든 채식 간식을 알려준다.  엄마의 노고가 있을 수 있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입맛이 변질되지 않아 효과가 크다.  이렇게 거의 대부분 아이들 아토피는 유제품을 끊고 시중에 파는 간식만 바꾸어도 많이 호전된다. 


은주의 아이는 레몬 쌀쿠키를 3조각이나 먹었고 은주는 스무디 2잔을 마시고 그날  집으로 돌아갔다.

6개월 후 은주는 다시 임신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간단히 나누고 곧 만나기를 약속했지만 그녀가 만삭이 다되어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예정일 2주 전까지 일을 하고 있었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토피는 여전해서 과자나 빵을 잘 먹지 못한다고 한다. 친구는 나를 만나러 오기 전 아들을 위한 레몬쿠키를 주문했다. 사실 은주는 꾸준히 나에게 레몬쿠키를 주문하고 있었다. 시중에 파는 과자 대신 나의 레몬 쌀쿠키를 아토피가 재발되지 않아 꼭 그것만 간식으로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 역시 그날의 핑크레이디 스무디를 처음 접하고 과일과 야채를 매일 한잔씩 먹는 실천을 하고 있었다. 꾸준히 먹으니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맑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스무디 간증을 종종 하곤 했다. 만삭이 된 그녀는 다시 빠르게 회복하고 임신을 할 수 있었던 게 스무디의 도움이 컸다며 나에게 책 선물을 한다. 책 안에는 그녀가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해 주었다.  



-나에게 유산과 둘째 임신, 복직 참 많은 일이 일어났어 하루하루 다가오는 닥치는 일을 처리하느라 뒤를 돌아볼 여유도 내일을 기대할 여력도 없을 때가 많아... 나 힘들었을 때 네가 만들어준 주스...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였어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 에너지 같은 것이 있는 거 같았어...(중략)-



그 후 나는 ‘핑크레이디 스무디’ 이름을 ‘임신 스무디’로 바꾸어 수업할 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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