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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Jan 05. 2024

떠남과 머무름

‘내가 어디에 있는 네가 있는 곳이 나의 집이야. 그렇게 여기며 살아갈 거야.’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썼던 편지다. 사랑이 있는 곳이 나의 보금자리라고 여길 만큼 무모했던 시절이다. 내가 있는 곳은 늘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주민등록초본을 가득 채우는 머무름과 떠남의 흔적들. 국가가 내어주는 서류가 이렇게 많은 서사를 담고 있을 일인가. 마당에 무덤이 있는 달동네에서 태어나고부터 내가 머문 동네를 헤아리자면, 유목민 같다. 행정동이 아니라, 풍경으로 기억되는 곳들.


일곱 살. 주방 뒷문으로 나가면 후추나무가 있던 집. 젊은 아빠가 구구단과 시계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태어나 처음 큰 눈이 내리던 날, 신이 나서 잠옷차림으로 텃밭을 가르고 달려왔다. 앞니가 빠진 우리 둘은 마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열 살. 섬에서 또 배를 타고 가는 섬에 살았다. 밤이 서둘러 찾아오는 동네였다. 불빛도 없는 까만 밤에 텃밭을 지나던 노루의 슬픈 눈빛이 선하다.


열네 살. 사는 집이 부끄러워 괜히 멀리 돌아오곤 했다. 집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서 아무리 짜장면이 먹고 싶어도, 배달 전화를 거 수 없었다. 품이 큰 교복을 입고 못생긴 단발머리를 하고 있던 나.


열일곱. 내 방에는 욕실과 다락이 있었다. 나보다 내 우울이 부피가 커졌다.


열여덟. 가느다란 징조와 행운을 빌며 매일 눈을 떴다. 비파나무가 있는 동네였다. 해가 뜨기 전 집을 나서고, 달이 떠야 집에 왔다. 전구알 같은 비파가 맺히는 걸 보며 시간의 흐름을 견뎠다.


동네는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난 늘 어디론가 가야 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라는 계시가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기다리는 힘이 되었다. 살았던 곳은 많은데 진정으로 살았던 곳은 없다.


여기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을 가진 건, 몇 해 전 망원동으로 이사오고부 터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가 보이게 된 건, 나를 ‘불완전한 존재’에서 ‘매일 만들어지는 존재’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쓰거나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머물러도 된다고. 떠남이 아니라 머무름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고.


나를 좀 더 좋아하게 되고부터 내가 사는 동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수많은 동네를 떠나고 나서야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의미 있는 떠남, 값진 머무름이다.


덧, 왜인지 떠나온 동네들에 평행우주처럼 다른 내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들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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