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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Mar 31. 2023

팔뚝에 날아온 행주

나는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타임슬립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시간을 앞당기거나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로 이동하는 일.


'그날로 돌아간다면, 그랬을 텐데.'



2018. 01

카페


그날도 역시 출근하자마자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출근 20분 전에 도착한 내가 기특했는지 격한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바쁜 거 안 보여? 빨리 설거지해!"

"네!"


바쁜 거 보였다. 빨리 설거지하려고 했다. 아니, 도와주려고 했다. 억울했지만 '나'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몇 시간 후, 그는 시재가 맞지 않는지 죄 없는 브라운 계산기를 탁탁 두드리며 나(?)를 부른다.


"네가 아까 현금 결제받았니? 계산이 안 맞는데?"

"저 오늘 설거지만 했습니다."

"그럼 누가 틀리겠어, 너 말고! 빵 이름은 다 외웠어?"


물론이다. 그냥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야, 이것도 빨아"


죄 없는 행주가 내 왼쪽 팔뚝에 날아와 죄 없는 싱크대에 툭 떨어진다. 이를 감사히 목격한 다른 직원이 대신 화를 내주었다.


"왜 애한테 행주를 던져요!"


'그'는 민망한 지 웃으며 내 시선을 회피한 후 할 일을 한다. '나'는 오히려 민망해하는 '그'가 가여웠는지 화를 내주었던 직원에게 웃으며 '척'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첫 출근날을 제외하고 그는 늘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나에게만. 세상을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해했다. '그'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적으로 욕심을 부렸다. 다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 겉으로는 웃으며 괜찮은 '척'하고.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내 욕심을 걷어찼고, 나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가족과 친구들은 왜 그에게 화도 못 내고 나왔냐며, ‘항상 네가 웃어주니까 호구로 아는 거야’라며 안타까워했다.


싸우기라도 해 볼걸. 부당한 대우에 반박이라도 해볼걸. 날 호구로 안 게 분명해. 며칠 동안 껄껄거리며 후회로 가득한 말을 내뱉고 살 정도였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이미지를 타인에게도 일반화시키기 시작했다. 현실이 아닌 상상을 하면서.




2018. 01

카페


"야, 이것도 빨아"


죄 없는 행주가 내 왼쪽 팔뚝에 날아와 죄 없는 싱크대에 툭 떨어진다. ‘그’에게 참았던 서러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말로 하시지 왜 물건을 던지세요? 저한테만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말씀해 보세요.”


화를 내는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를 기회로 여긴 나는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였다. 이를 목격한 다른 직원이 나를 진정시키고 따로 불러내며 말했다.


“속 좀 후련하세요?”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냥 할 말을 잃었다. 화를 내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고개를 푹 숙인 죄인이 된 듯했다. 잘못은 ‘그’에게 분명 있음에도 내가 잘못한 기분은 뭘까.


“죄송합니다..”




살다 보면 나보다 더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내 친구 원은 상사에게 정강이 맞는 일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건설 현장에서는 정신 교육으로 일상일 수도 있겠다며 생각했다. 그도 분명 처음에는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오히려 생명줄을 붙잡아 준 그에게 감사할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론으로 애쓰고 살아간다. 정답은 절대 없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가 많은 사람에게 '나'만의 정답을 공유하고 싶다. 지난날의 ‘나'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경험치가 쌓여서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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