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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Mar 30. 2023

프롤로그

사랑한다는 말. 친구, 가족, 애인에게는 쉽게 전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상 속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대한 해결법은 포기와 좌절뿐이었죠. 애꿎은 나만 탓하고, 원망하고 이런 나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어느 날 문득 그의 시큰둥한 말 한마디는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실의를 딛고 일어서도록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 수필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나는 스물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감히 아버지보다 눈썹이 하얘졌다.

머리색은 까맣고.




2017. 03

생활관


여느 때처럼 상쾌한 기상나팔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여느 때처럼 캐비닛 문을 열고 거울을 보며 주섬주섬 눈곱을 떼어 냈다. 보통날 같으면 바로 캐비닛 문을 닫고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며 아침 점호를 맞이한다. 그날은 이상하게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고 싶었다.


'노화가 빨리 찾아온 건가? 보통은 머리부터 아닌가? 이십 대에 눈썹이 하얘지는 경우도 있나?..'


"빨리 집합해!"


복도에서 선임들의 따듯한 재촉이 들려왔다. 덕분에 순간 몰입했던 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뛰쳐나갔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흰 눈썹은 새치처럼 스트레스 부작용이라며 자가진단 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눈썹이 하얗다.

게다가 왼쪽 뺨부터 가슴팍까지 하얗다.

머리색은 아직 까맣고.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백반증 환자다.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끊을 수 있는 악한 것들은 다 끊어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젖소, 짹슨이라 부르는 악한 존재들.

단절을 했음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은 바닥으로, 두려움은 배로 커져갔다.


갈수록 나는 '나'까지 끊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시큰둥 해하며 말했다.


"야, 별로 티도 안나는 데 뭘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하던 거 해 그냥"


순간 벙졌다. 그리고 끊었던 담배를 겨우 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남들의 외모와 그들의 삶을 그리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의 시큰둥한 대답은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실의를 딛고 일어서도록 위로해 주었다.


나도 나만의 이야기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시큰둥하지만 벙지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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