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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Apr 19. 2023

하와유 증후군

나는 한 곳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은 떠나고 없다. 나의 등하교, 출퇴근 시간은 늘 그들과 함께였다. 마치 서로 짠 듯 정해진 시간에 엘리베에터에서 만나 끼니 안부만을 묻고 떠날 때가 그립다. 2년 전부터 든 생각인데 사실 그 시간이 그립기보다 그들이 그리운 게 더 크다.


603호 아주머니는 언제나 나를 보면 두 손을 번쩍 들고 눈웃음과 함께 난리가 나신다. 옆에 있던 따님이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니까. 한 번은 동네 안경점을 들르고 집으로 가는 길 우연히 아주머니와 그녀의 일행을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의 행동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일행에게 마치 내가 아들인 것처럼 소개했고, 나도 부담스럽지 않아 이에 걸맞은 인사를 건넸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1111호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떠나신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녀와 나는 20년 전 벽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었다. 가정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그녀의 심기를 어린 내가 건드렸다. 그녀는 나 홀로 있던 집에 쫓아와 가정교육을 논하며 혼을 냈다. 나는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퇴근한 아버지에게 일렀다. 우리 집과 오랜 이웃이고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기꺼이 그녀와 말다툼했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는 끝인 줄 알았지만 오히려 호전됐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어른들은 연을 끊자는 화법이 아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바빴다. 내 인생 참된 어른 중 한 명이었던 그녀가 10년 동안 지독한 암투병 끝에 1년 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층수 표시판을 주시하며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도한다. 동네를 잠깐 산책할 때도 아무도 나를 아는 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 내 안부를 묻는 것에 대한 두려움. 독립했을 때 외로움이 그리울 때도 있다. 억지로 긍정을 끌어올리기엔 이미 자존감은 밑바닥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 그런 시기다. 606호 아저씨는 언제나 나를 보면 안부를 묻는다.


"요즘 뭐 하냐?"

"일하러 가요~"


일부러 최대한 침울하게 대답하고 시선을 회피한다.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원하는 일을. 2년 전 퇴근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와 한창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본인 일부터 시작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조카 자랑까지 쉴 새 없이 이어갔다. 결국 그는 내가 얼마를 버는지까지 물었다. 본인 울타리 안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부족해야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를 내 울타리에서 내쫓았다. 501호 아주머니는 언제부턴가 나를 보면 이상하게 말을 건네신다.


"젊은 사람이 이 시간에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니?"


606호 아저씨 울타리 안부가 그립다고 느낀 한 마디다. 단칼에 대답이라도 할 수 있었기에. 사람마다 안부를 묻는 방식이 다르다고 인정하는 순간 내면의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끼니 안부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게시판에 부착돼 있는 시 한 편을 읽고 나도 그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런 사람으로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이 따뜻하고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빛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비바람이 거센 날도

겁나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 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나태주,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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