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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Apr 21. 2023

그녀가 말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내년 이 맘 때쯤까지 길거리에서 캐롤이 흐르지 않는 날이었다. 분명 내가 틀리지 않았다. 오늘은 아쉽게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다. 덜 녹은 눈으로 애매하게 덮인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당황한 기색 없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혼자일 때는 몰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오늘은 그럴듯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인지 눈이 번쩍 떠졌다. 당장 내 밑으로 지름 십 미터, 깊이 백 미터 크기의 싱크홀이 생길 만큼 한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이들로 가득했다. 웬만하면 누르지 않는 클락션을 무려 삼초동안 꾸욱. 모든 사람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날인 듯했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포스터의 「Fall in Love This Christmas」는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더욱 달콤하게 들렸다. 그녀가 말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


뭔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복잡한 머릿속과 같은 좁은 이차선 도로를 벗어나고 뻥 뚫린 대로변을 내달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었다. 오늘은 분명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다. 내 앞을 가로막았던 역주행 승용차를 다시 떠올렸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오후가 괜스레 화만 가득했다. 새하아얀 눈으로 덮인 것처럼 창백한 역주행 운전자가 당황한 기색으로 내 앞에 멈춰 섰다. 집으로 가는 차 안은 부끄런 한 숨으로 가득했다. 웬만하면 누르지 않는 클락션을 누르기 전 삼초동안 꾸욱 참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날이었다. 오늘은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각자에게 특별한 날일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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