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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Apr 29. 2023

해피버스데이투미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 보세요!"


오늘도 축하를 할지 말 지 고민하다 결국 못했다. 며칠 동안 SNS 홈은 그의 선물 사진 인증과 감사 인사로 도배됐다. 조금의 부러움과 동시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렇게 많은 선물을 받고 감사를 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갈수록 이러한 나날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당사자에게 물어보기엔 조금 추해서 내가 직접 축하받은 날을 회상했다. 축하받은 날은 셀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2003. 6.


오늘은 내 아홉 번째 생일이었었다. 순이, 훈이, 석이, 훈이, 혁이와 집에서 짜장면, 탕수육, 치킨을 먹었었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셔서 못 오셨었다. 그래서 석이 엄마가 오셔서 시켜주셨었다. 엄마가 안 오셔서 슬펐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었다. 훈이가 화이트보드가 달린 필통을 주었었다. 그리고 혁이는 <노란 손수건> 만화책을 주었었다. 밖에서 담장을 넘다가 운동화 끈이 걸렸었다. 대롱대롱 매달렸는데 순이가 도와줬었다. 순이는 진짜 착한 친구다. 집에 다시 와서 탑블레이드 놀이를 했었다. 즐거웠었다.


2013. 6.


기다리던 3교시 수업 종이 울렸다. 오른쪽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 헝클어진 이어폰 줄을 재빠르게 풀어냈다. 월간 윤종신 5월호 「너에게 간다」를 무한 반복 플레이한 지 한 달째. 그의 음악은 시끄럽기도 치열하기도 한 교실을 몽환적으로 단번에 바꿔주었다. 꽉 채우다 만 십 분의 쉬는 시간을 늘 행복하게 보내야만 했다. 그 시간 말고는 행복을 자연스레 체감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신분이지 않았나. 한창 빈티지숍에서 보물을 찾듯이 디깅 중인 내게 누군가 찾아왔다. 교복 셔츠는 벗어두고 미즈노 파란색 로고 티셔츠 한 장과 카드 목걸이를 한 원이 다급하게 불렀다.


"빨리 빨리 빨리 옥상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영화 속 한 장면인 학교 옥상으로 무언가 홀린 듯 따라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든 흰 토끼를 따라가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꼈다. 사실 일 분도 아까운 시간이었기에 흔치 않은 그의 부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펑! 학교에서 전례 없는 나를 위한 폭죽이 한 방 터졌다. 까암짝 놀랐다. 이어서 승이, 혁이, 준이, 진이, 준이, 원이, 준이가 1.5 배속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선물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축하를 만끽할 새 없이 재촉이 들려왔다. 서둘러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무교인 나는 세상 모든 신을 소환해 행복과 건강을 빌고 열아홉 개의 초를 재빠르게 소화했다.


2019. 6.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비바 마젠타 컬러의 꽃무늬 벽지, 삐걱 거리는 우드톤 침대 프레임, 그리고 그나마 개인 취향 한 스푼 더한 블랙체리향 가득한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충주행 기차에 올라탔다. 몸에 냄새가 밸 정도는 아닌 쾌쾌한 화장실 통로를 지나 3호차 22번 좌석에 앉았다. 일찍이 찾아온 무더운 여름 햇빛을 가로지르며 열차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꽤 고단했다. 베이지 컬러의 그라미치 반바지 왼쪽 주머니에 에어팟이 연결된 짓눌린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애매한 기분을 몽환적으로 크로마키 할 필요를 느꼈다. 존 메이어의 「New Light」 뮤직비디오를 플레이했다. 선곡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한껏 끌어올린 기분과 함께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아식스 조그 100 블랙 컬러 런닝화는 나의 장바구니 위시리스트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얼마 전 영어 학원 등록 덕분에 몇 주는 더 1위 행보가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친누나 찬스를 쓰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을 대수롭게 생각한 나는 누나에게 소유욕 가득한 메시지 한 편을 끄적이고 있었다. 그때 같은 건물에 자취하는 현이에게 언제 도착하냐는 설레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나에게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는 잠시 접어두고 도착까지 꽉 채운 십 분 정도 남았다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한 걸음 달려가 오래간만에 담배 한 대 태울 생각에 더욱 설렜다.


자취방 도착까지 1분 전, 보라색과 연두색이 어우러진 간판의 편의점과 자취방 건물 현관 사이 골목에서 손을 세차게 흔드는 현과 친구들. 한 걸음 달려가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애매하게 땀에 젖은 구겨진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며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 현이 갑자기 노력으로 포장된 직사각형 선물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뒷골부터 오른쪽 팔뚝까지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에 있는 팝핑 캔디가 터지는 듯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날이었다. 포장지를 시원하게 뜯어내고 상자를 연 순간 아식스 조그 100은 위시리스트 1위 행보를 멈춰 섰다. 미친 듯이 환호하며 뛰어올랐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가 오히려 더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어 가기도 한다. 물질적 선물이 동반된 축하가 부담인 건지,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이 부담인 건지 고민하는 자체가 진절머리가 난다. 받은 만큼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엔 내 생일은 참 애매한 시기에 걸려있다. 나를 위해 축하해 준 그들로부터 얻은 기쁨을 끄집어내면 남을 위한 축하는 쉬운 일이기도 하다. 당장 해보기로 했다.


2023. 4.

오후 11:06

권이에게


"권아, 생일 축하해! 하루 가기 전에 축하드립니다."

"와! 감동이야. 네가 축하해 줄 줄은 몰랐어."

"그럼 성공이다!"


먼저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절대 받을 생각으로 보낸 축하가 아닌 진심 어린 마음을 담고 용기를 내어 보낸 메시지다. 말이 길어지면 핑계처럼 보이니 그만. 핑계가 맞는 듯하다. 괜찮은 방법인 줄 알았다. 내가 축하받은 날을 꼭 회상해야만 남을 축하할 줄 아는 멍청함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나를 축하할 줄 모르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긴다.


무엇보다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가는 요즘이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축하할 줄 모르는 내가 더 모르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큼 축하받는 일도 함께 줄어들지도 모른다. 고독을 즐긴다는 건 나를 더 알아간다는 것. 나를 축하해 주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일어나는 날이 있다. 바로 생일. 일 년에 한 번은 나를 축하해 주고 사랑해 준다면 고독을 즐기면서 남도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새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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