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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Apr 06. 2023

손떨림방지

새벽부터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아니한 하늘은 내 얼굴이 건조해 보였는지 미스트를 뿌려댄다. 지난 주말까지 아주 잠깐일 뿐인 섬광의 틈새로 드러난 벚꽃과 놀이하길 참 잘했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티모시 샬라메의 아니, 우디 앨런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2019)에서 재즈를 사랑하는 개츠비(티모시 샬라메)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휘리릭 스친다. 스치기만 하면 너무나 아쉬웠던 터라 듀크 조단의 「Everything Happens To Me내겐 이런 게 일상이에요」를 선곡 후 카페로 향했다.




2023. 04

카페


벚꽃으로 봄놀이가 끝인 줄만 알았던 내게 그녀가 미스트 한가득 머금은 신문지로 덮인 꽃다발을 오늘도 건넸다.


"꽃꽂이 처음 해본 거 맞아? 깜짝 놀랐어, 예뻐서! 오늘도 해 볼래?"


지난번 내 습작이 마음에 쏙 드신 모양이다. 그녀의 칭찬과 곁들여진 부탁을 오히려 감사해했고 오늘도 빈 병에 물을 채워 꽃을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노오란 퐁퐁이 국화 한 송이를 가운데에 놓고,

하이얗고 아련한 핑크빛 카네이션 다섯 송이를 주위에 감싼다.

다시 노오란 후리지아를 카네이션 사이에 꽂는다.

투명하고 엔틱한 화병 크기에 맞춰 줄기도 과감히 싹둑.

단, 자를 때마다 "미안해!"라고 외친다.


봄을 만끽하던 와중에 '불청객'이 들어왔다.




누군가는 꽃꽂이할 때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진정이 된다는데, 왜 나는 이상하게 손이 계속 떨릴까. 이왕 떨릴 거면 처음 무대에 선 것마냥 덜덜덜 떨리지 그래. 왜 스타카토처럼 떨렸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는 거냐고! 아무래도 이놈의 손 떨림을 방지하지 않고서는 작은 행복조차 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미세한 떨림.


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면서 떨린다. 오히려 누군가 옆에서 감시하기 때문에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한 상태이길 바랄 정도니까. 조금 더 내 감정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그에 비해 서툰 실력의 조합으로 나타난 결과는 아닐까.


어쩌면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 만큼.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내겐 이번생엔 처음이라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잘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은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해, 작은 행복이 불행으로 상전이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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