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 차이의 생과 사
조금은 갑작스럽게 업무 차 지방 출장을 가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가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낯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숙소 앞 한 100미터 거리쯤에 있는 정류장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로 건너가는 중이었다.
해는 이미 저문 지 오래라 깜깜한 상황이었는데, 특히 그 지역이 지방이기도 하고 사람이 자주 걸어 다니지 않는 구간이라 그런지 조명이 거의 없고 매우 어두운 상황이었다.
왕복 2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고 있는데 - 신호등은 없었다 - 갑자기 내 오른쪽에서 끼익 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차도 급정거의 여파인지 살짝 틀어져서 차선을 넘어가 있었고 거의 내 옆에 와서 서 있었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나를 보는데 기분이 매우 나쁜 표정이었다.
아,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다. 나는 놀라고 어리둥절한 채로 운전자에게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얼른 숙소를 향해 가던 길을 갔다.
당시에 나와 동행하던 일행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차가 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차가 오고 있는데 그것도 못 보고 건너간 나의 잘못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거기는 분명히 횡단보도였고 길을 건너는 사람이 우선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고가 났다면 차량의 책임이 훨씬 컸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면 그런 건 거의 - 아니 어쩌면 전혀 -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부딪힌 나는 사경을 헤맸을 것이고 어쩌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던 순간에는 그냥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출장 기간 내내 그 순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내가 그 순간 죽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도우셨구나. 아직은 데려가시지 않기로 하셨구나.
그 순간 이후에 내가 하는 모든 생각, 행동, 걱정, 피곤, 행복, 웃음 등등은 어쩌면 덤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출장에서 돌아오고 가족들, 아내와 아이를 보는데 다시 또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아, 내가 이 얼굴들을 다시 보지 못할 뻔했구나.
"자는 동안 데려가시지 않고 아침에 눈을 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속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죽음을 생각한다.
언제 어떻게 부르실지 모르는 채로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매 순간을 조금 더 기쁘고 행복하게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들은 내 삶에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출장 중에 겪은 그 순간 이후에 덤으로 생긴 내 시간들, 내 인생들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인가.
별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지루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겠다.
Thank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