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은 있지만 치사랑은 없다
나의 좋은 모습만 닮으라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맞춰 안과와 치과 예약을 한다. 6개월마다 안과는 드림렌즈 검진을 치과는 치아 정기검진을 가는 것이다. 특히 둘째 아이가 약간의 법랑질형성부전증이라 이빨이 약해서 잘 썩는 편이고 부정교합이라 성장이 완료되면 이빨 교정도 준비 중에 있다. 시력도 안 좋고 키도 작고 걱정과 비교를 하려면 끝이 없다. 성격 좋고 친구들도 많고 자기 일 스스로 잘하고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는 장점이 훨씬 많은 아이인데도 엄마 눈에는 모자란 거 안쓰러운 게 더 많이 보인다. 그게 아이 탓이라기 보단 내가 못 해줘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바닥에 깔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초경을 하고 5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다. 그 시절 아이들에 비해 빠른 편이었다. 그 덕에 키는 초등학교 6학년 155.5cm에서 중학교 3년 동안 1년에 딱 1cm씩 크고 158.5cm에서 멈췄다. 작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니 내 키가 작은 것만 같았다. 남편 키가 180cm라서 아이들은 170cm까지 쑥쑥 크는 은근한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키는 날 똑 닮았다. 심지어 둘째 아이는 내 키를 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아빠 키는 다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내가 2차 성장이 빨랐고 아이들의 성장도 또래보다 빠른 것 같아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성장 확인을 했다. 서울에 있는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종합병원에 성장클리닉도 있는 곳이었는데 어느 해,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는 이미 치료가 늦었단다. 특히 둘째 아이는 남은 치료는 성장호르몬주사뿐이고 그것도 맞으면 2~3cm 클지 말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심스레 "성장주사 말고 억제주사를 맞으며 몇 달 지켜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니 "의사 말을 믿지도 못하면서 왜 오냐"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6개월에 한 번씩 당신한테 진료받고 있는 중이지 않았냐'고 소리치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아이는 자기도 키가 크고 싶다고 울고 예상키는 152cm가 나왔고 그동안 유별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다녔던 병원이었는데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 자료를 그대로 가지고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다른 종합병원에 가지고 갔다. 솔직히 다른 병원에서 152cm 예상키를 듣고 왔다고도 말씀드렸다. 그 병원에서 나온 예상키는 158cm였다. 솔직히 욕심은 168cm였는데 158cm만 되어도 세상 사는데 충분하다고 위로했다. 부디 그 정도만이라도 컸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의 키는 157cm이다. 운이 좋으면 1~2cm 정도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남편보다 내 유전자가 더 강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나의 안 좋은 부분을 닮으면 그게 마치 나의 잘못인 것만 같다. 솔직히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이에 관련된 일은 사사건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쓰이면서 나도 부모님껜 그런 자식이었을 텐데 그런 마음을 먹고 자랐었을 거면서 부모님껜 아이와 같은 마음은 쓰이지 않는다. 이래서 내리사랑은 있지만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나는 엄마가 어릴 때 아파서 죽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쪽 귀의 고막이 반쯤 녹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래 남보다 조금 큰 줄만 알았다. 내 결혼식을 서둘렀던 일도 엄마 귀수술을 앞두고 최악의 경우 신경을 건들게 되면 몸에 마비가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단 사실도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 엄마가 어릴 땐 위험한 수술이라 하지 못했지만 이젠 의학이 발달해서 간단한 수술 중 하나가 되어 마비가 되거나 그런 일은 잘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가능성이 걱정되셨나 보다. 그리고 며칠 전에서야 그 수술을 하신 후로 6개월에 한 번씩 귀지를 빼러 이비인후과에 다니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 안 모양이 가정에서는 귀지를 뺄 수 없다는 사실을 수술 후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부모님껜 무심했었나?
나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나와 동생이 자랐던 모습과 제법 닮게 크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 엄마의 삶이 떠올랐다. 엄마의 삶이 나의 모습에 투영되었다. 나도 엄마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까? 남편도 아빠와 다른 모습이 있지만 분명 닮은 모습도 보인다. 사귈 때는 분명 다른 모습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보고 큰 익숙함이 나도 모르게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주었을까?
엄마 덕에 내 인생은 엄마보다는 많이 배웠고 자유롭고 여유롭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한테 고맙다. 조금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두 분의 사이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연들을 떠나서 자식들에게는 최선을 다해주셨다.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와 아빠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젠 의식적으로라도 엄마랑 아빠에게 관심을 좀 가져야겠다. 하지만 이렇게 다짐해도 며칠 지나지 않아 여러 핑계를 대며 까먹을게 자명하긴 하다.
며칠 전 병원에 왔다는 내 전화를 받으며 깜짝 놀라던 아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곧 진료 순서가 다가와서 조용히 지금 병원에 와있으니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 건다고 한 것이었는데 그 사이에 엄청 걱정이 되셨나 보다. 그게 부모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