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간식이나 저녁을 먹으러 집에 잠시 들릴뿐 학원을 다녀오면 밤이 되었다. 남편도 늦는 날이 많아서 알바를 가는 화, 목을 제외하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집에 나 혼자일 때가 많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친구들은 나의 자유시간이 부럽다고 하고 맞벌이인 친구들도 나의 여유로운 시간이 부럽다고 한다. 나 역시도 이런 시간들이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게 반복될수록 가는 시간이 아깝고 허무하고 스스로가 점점 멍청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도 하고 취미도 가져보고 모임에도 나가고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갑자기 넘쳐흐르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한편으론 한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스스로가 싫고 허무하기만 하다.
전업의 시간이 길었기에 이제 와서 직장 생활을 하자니 자신이 없다. 나가서 일하는 시간과 나의 노력 대비 받는 월급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아이들의 밥도 아직은 걱정이 되고 엉망이 될 것만 같은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나도 마냥 젊지만은 않다.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옛날처럼 다니면 곧 몸이 아프거나 피로도가 쌓였다. 어쩌면 이건 분명한 나의 핑계다.
아이들의 학원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서서히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최소한의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쓰자는 마음에 알바를 시작했다. 재미있고 활력소가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반면 가기 싫고 자신감과 자존감 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했다면 지금쯤 많은 경력과 실력이 쌓였을 텐데. 지금보다는 많은 연봉을 받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쓰고 싶은 곳에 걱정 없이 쓸 수 있었을 텐데. 일을 그만둔 덕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직장 내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은 애써 모른척하며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만 부러워하고 탐내고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주변에서 보아왔음에도 말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은 내가 아이들로부터 독립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아이들이 나에게서 독립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의 남은 삶이 달라짐을 안다.
솔직히 다행스럽게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많다.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하는 게 좋을지 모를 정도이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바꿔야 한다는 두려움과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 그리고 게으름과 빈약한 의지력, 자신감 저하로 인한 무서움 등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이들 크는 모습에 즐거움을 느끼고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바쁘게 살아서 이런 생각이 들 시간이 없었다. 이것도 먹고살만하니 드는 여유로움일 테지만 아마도 이게 갱년기의 시작인가 보다.
앞으로의 인생도 잘 살고 싶은데 그럼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살건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지 제2의 인생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에겐 시간과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