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 경험기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험회사 시험을 쳐달란다.
그러면 소정의 선물과 수고비를 주겠단다.
보험회사? 시험??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
그랬더니 내가 안되면 주변 사람이라도 소개해 달란다. 자기 주변에 노는 사람이 없단다. 지금 너 놀고 있지 않냐고...???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 방학기간에는 일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여튼 지금은 놀고 있고 내가 쓸 용돈이 필요했다. 평소 제법 많은 금액을 보험료로 내고 있어서, 내가 가입하고 유지하고 있는 보험이 괜찮은 상품인지도 늘 궁금했었다. 나의 보험은 사회초년생일 때 친척들의 부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입한 것이었고 보험회사에 취업한 친구들의 부탁, 그것도 아니면 콜센터의 상품이었다. 최근에 가입한 상품들은 나름 찾아보고 알아본 것이긴 하지만 보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여전했다.
보험회사 교육장에는 여러 지점에서 소개받고 오신 동기 교육생들이 17명 정도가 계셨다.
나처럼 소개를 받고 오신 분, 정말로 보험설계사 일을 하려고 오신 분, 예전에 잠시 다녔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시는 분, 투잡을 생각하고 오신 분, 시험만 치러 온신 분 등 다양한 이유의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계셨다.
보험회사에 한 달 동안 출근하며 5일은 시험공부를 하고 4일은 예상문제를 풀고 1일은 시험을 치러 갔다. 그리고 본사방문도 하고 회사 상품 설명도 들었다.
나는 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했던 터라 회사 생활의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가져보는 회사 출입태그와 나름 근사한 사내식당, 내 이름이 적힌 자리는 마치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시험 합격 후, 3달 동안의 출근을 부탁받았다.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우니 마음대로 해도 된단다. 어차피 4월까지는 일이 없으니 보험회사 다니면서 금융공부도 하고 평소 궁금했던 보험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하다가 나랑 잘 맞는 것 같으면 하던 일이랑 병행도 가능하니 우선 한 달만 다녀보란다. 솔직히 보험설계사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험회사를 다니진 않을 것 같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내 보험을 가입할 때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던 터라 교육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을 듣기만 하면 보험에 대해 척척박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일을 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끊임없는 공부와 끊이지 않는 영업을 해야 하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쳐주고 보험회사에 몇 달 다니다 보면 최소한 내가 든 보험에 대해서 만큼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헷갈리기만 하다. 무엇보다 보험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그 질문에 따른 답이 명쾌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약관에 따라 사례가 다 다른 탓이다.
보험은 흔히 3번을 후회한다고 한다. 가입할 때 한번, 가입하고 나서 한번 그리고 보험금을 탈 때 더 많이 들 걸 하고 한 번. 보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흔히 옛날 보험이 더 좋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새로운 병과 치료법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장이 달라진다. 그리고 보험약관에서의 '어' 다르고 '아' 다른 해석을 유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가입시킨 보험으로 보장을 받아 한 가정이 경제적인 위험에서 벗어나고 그래서 가정을 지키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느끼고 하는 일에 자부심도 생긴다고 하셨다. 여러 가지 사례에서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변에서도 병에 걸렸을 때, 보험 조금 더 들어놓을걸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 이 일을 못할 것 같다. 나의 권유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고객들을 책임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보험회사가 이런 곳이구나~ 하고 안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부모님의 보험 가입 내역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거다.
평소 보험을 든든하게 들어놓았다고 하셔서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구멍이 많았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이것저것 대비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하니 그중 적당한 선에서 부모님 보험을 하나씩 가입해 드렸다. 이것저것 비교하다가 타 회사 상품으로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을 통해 가입한 건 안비밀이다.
20년 납입 100세 만기.
'20년 납입이면 엄마, 아빠 나이가 어떻게 되지?'
평소 애써 외면했던 사실이 현실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20년 완납까지 사실 수 있으실까? 그때까진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주시겠지?'로 포장을 했지만 슬슬 무서운 나이가 되셨다.
'20년 납보다 갱신 30년이 더 좋으실 수도 있어요. 갱신이 더 싸기도 하고 어쩌면 완납을 못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기분이 씁쓸하고 두렵고 슬퍼졌다. 그동안 엄마, 아빠 나이를 그냥 숫자로만 생각하고 살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