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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스

연락을 부탁해!!

by 지니운랑

아이가 중학교 3학년 영어 시험을 치고 망하고 왔을 때였다. 나는 홧김에 티처스 출연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내버렸다.

네이버 폼에는 아이와 가족 기본 정보와 소개, 시험 일정과 성적, 목표 대학과 장래희망, 학업에 대한 고민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부모님이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적게 되어 있었다.

어떤 생각과 기분을 가지고 그 글을 적어 내려갔는지는 모르겠다.


평소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았던 터라, 한 번쯤은 잘 보고 싶은 마음에 학원도 열심히 다녔고 교과서도 본문을 전부 외워서 쓸 수 있을 정도로 노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저조한 점수를 받았을 때는 속이 무척이나 상했다. 아이의 노력이 보답받지 못해서, 아이의 실망이 걱정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고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난감했었다.

그 당시 참을 수 없는 화를 티처스 출연신청서에 담아 제출했고 돌아서서는 내가 왜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을 했는지에 대한 약간의 후회와 차잭을 남기고 개인정보 유출에 민망해했었다.


그로부터 1년 하고 6개월이 흘렀다.


어느 날, 티처스라고 하면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아직도 여전히 영어를 못하나요?"

...

영어 못하는 아이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 아직도 여전히 영어는 아이에게나 나에게도 해결할 수 없는 앞이 깜깜한 미로와도 같았다.


진학한 고등학교와 현재 아이의 성적, 가족 출연 동의 여부와 그때 적은 장래희망이 지금도 여전한지 등에 대해서 묻고 가족사진과 자세한 성적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의논을 해봐야 알겠지만 신청자가 많아서 아마 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나 역시 안될 것 같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연락이 왔다는 것이 신기하고 혹시라도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고 나중에 가서야 가족 사생활이 전부 공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티처스에서 연락이 왔는데, 100의 1이라도 혹시나 출연 연락이 오게 되면 사생활이 공개될 텐데 괜찮겠어?"

그랬더니 남편이 "티처스? 티처스가 뭔데??"

......

"그동안 내가 가족 톡방에 티처스 관련 유튜브 URL 보낸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거? 그건 아이들 보라고 보내는 건 줄 알았지. 나도 관련이 있는 거였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데는 엄마의 정보력과 조부모의 재력과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데, 그중 아빠의 무관심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분이시다.

둘째 아이는 조정식 T와 정승제 T를 실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사실에 신기해하고 설레어했다.


시간이 지나고 연락이 왔던 설렘이 잦아들 무렵, 지인들에게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말하게 되었을 때,

그래도 '촬영을 하면 아이 성적이 오를 텐데, 이런 기회가 어디 있어? 최대한 불쌍하게 최선을 다해서 어필을 해보지 그랬냐'라고 하는 사람과 '우와~ 일반인 신청자에게도 연락이 오는 거였어?' 연락이 왔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티처스에 출연하고도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냐'는 걱정과 주변 아는 사람 학교에 티처스 촬영했던 아이가 있었다며 그 아이의 경험을 공유해 주신 분까지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첫째 아이가 미미미누를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작은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말하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렸어야 했나?

누구 말 따라 TV에서 처럼 아이 성적이 획기적으로 상승한다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볼걸 그랬나?

약간의 후회가 섞인 별별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은 지금으로선 티처스에 사연을 써서 답변 연락을 받아봤었다는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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