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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는 가족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by 지니운랑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한 달 전, 아이들의 학원 일정을 피해 적당한 시간으로 예매해 두었다.

이제 곧 개학인데, 방학동안 한 것이 없는 느낌이 들어 방학이 끝나기 전에 가족 나들이 한 번은 하고 싶었다.


"함께 미술 전시회를 보러 가자."

호기롭게 소리친 나에 비해 아이들과 남편의 뜨뜻미그진한 반응이란..

'엄마가 가자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우리가 가주는 거야.'

...


개인적으로 미술관, 박물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막상 혼자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같이 가고는 싶지만 감상은 혼자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사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반고흐나 카라바조 전시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고흐전은 방학기간이라 티켓 발권하는데 1시간, 입장하는데 1시간이란 소문이 들렸다.

전시회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제값을 주고 보고 오는 건 왜 이다지도 아까운지 모르겠다. 만약, 아이가 보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더 비싼 가격이었어도 다녀왔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다둥이 할인을 받아 조금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가면 항상 도슨트 시간을 확인하고 참여하곤 했다. 그것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이번 미술전시회에 가서도 오디오 가이드 속 설명을 착실히 다 듣고 나왔다. 이러면 여러모로 간 보람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전에 전시회 정보와 감상포인트 등을 공부하고 가서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감동받은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림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그림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왜 유명한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론 저 그림이 훨씬 더 괜찮아 보이는데...?'가 내 감상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만 느껴도 되는 거 아닌가?


며칠 전, 남편과 둘이서 간 서촌 대림미술관 케이이치 타나아미전의 감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적 지식과 감각이 없는 나에겐 도슨트를 들으면서도 '현란하고 괴상하고 이런 것도 작품이 되는구나.' 그림보단 스케이트보드나 서핑보드 같은 활동적인 물건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란 느낌이 다였다. 아마, 무료 초대권이 아니었다면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오는 건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챙겨서 보러 가지도 않는 것이 지금의 내 수준이다.


2년 전에도 다 같이 미술 전시회를 갔었다. 오늘 전시와 동일한 장소에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보았다.

1년 전, 동유럽 패키지여행 중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과 쇤부른 궁전에서 그 당시 '합스부르크 600년'에서 본 그림 속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땐 그 익숙함에 반가웠고 더욱 신이 났었다. 패키지여행이라 후딱 보고 나와야 하는 아쉬움 속에 클림트, 고흐, 뭉크 등의 그림은 다보지도 못했고 체코 크룸로프에서는 에곤실레 아트센터 대문만 보고 지나쳐야 했기에 오늘의 전시회에서 보게 될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들이 아이들에게 다른 어떠한 화가의 작품들보다 더 남다른 기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과 남편은 전혀 감흥이 없어 보였다.

'에잇~! 내가 이거 예매하려고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는데...'


2023년 큰아이 중학교 졸업여행으로 떠난 동유럽여행은 내가 몇 년간 알뜰살뜰 모은 절약의 결과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는 우리가 자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나에게 있어 해외여행을 간다는 건 아끼고 생각하고 또 계획해야 실행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 같은 일이었다.

아마 코로나가 없었다면 큰아이 초등학교 졸업여행으로 한 번의 해외여행을 더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해외여행은 못 가지만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대학로 소극장에 연극을 보러 가고, 가장 위 가장 저렴한 자리지만 뮤지컬, 오페라, 서커스를 관람하고 등산, 스키를 다니는 것도 과분한 추억이다. 이렇게 함께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힘든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크고 어른이 되어도 가끔은 함께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모르겠다.


오늘은 아이들이 미술 전시회를 보는 동안 조금 일찍 나와서 평소 사고 싶었던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취객선비 소주잔'을 구입했다. 소주를 잘 마시지는 않지만 소주잔을 구입한 기념으로 이따가 밤에 남편과 함께 한 잔 따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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