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골목 여행
동네 친구엄마들이 물고기 반지를 하잖다.
물고기 반지를 끼면 자식이 잘 된단다.
동양에서는 물고기가 밤에도 계속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로 큰 시험을 앞둔 자녀의 합격과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서양에서는 물고기를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긴단다.
믿지는 않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를 핑계로 종로 3가 귀금속거리 구경을 나섰다.
손가락별로 반지의 의미가 있고 자녀를 위해서는 오른쪽 애끼손가락에 자식 수만큼의 물고기 마리 수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그냥 각자가 끼고 싶은 손가락의 호수를 측정해서 동일한 디자인의 물고기반지를 주문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우정반지처럼.
그리고 그날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광장시장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줄 간식으로 빈대떡을 포장해 왔다.
다음 주는 주문해 놓은 반지를 찾고 집에서 잠자고 있던 한 짝 남은 귀걸이와 폐금인 금니, 아이들이 어릴 때 만들었던 미아방지 목걸이를 가지고 가서 팔고 그 돈으로 다시 두 아이에게 줄 목걸이를 주문했다. 내가 20살이 되던 해, 엄마가 기념으로 사주신 목걸이를 아직까지도 하고 다녀서 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는 목걸이를 선물로 해주고 싶었었다.
볼일을 보고 다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명동방향이란 이정표를 보게 되었다. '여기보다 명동이 먹을 곳이 더 많겠지?' 하며 무작정 걷다 보니 을지로 3가를 지나게 되었다. '요즘 을지로가 힙지로로 불린다며?' 평균 48.6세 아줌마 5명은 그렇게 들떠서 옛날 을지로 인쇄 골목에서의 추억거리를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명동까지 갈 필요가 있겠어? 여기서 점심을 먹자.'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골목의 눈에 띄는 음식점에 들어갔고 생각 외로 맛있는 음식에 혹시나 하고 폰으로 검색하니 유명한 집이라고 잘 들어왔다며 다들 소소하게 기뻐했다. 그리고 근처 예쁜 카페가 없냐며 찾아 들어가선 평소 동네 카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기분도 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타코집을 발견하여 아이들 간식도 챙겼다.
그리고 그다음 주는 나는 아이들에게 줄 목걸이를 찾기 위해, 다른 분들도 액세서리 세척, 금판매 및 구입 등의 각각의 사유로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늘의 점심은 익선동으로 향했다. 익선동 골목은 구석구석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인스타에서 자주 본 카페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줄 소로보도 잊지 않고 구입했다.
개중 주문이 잘못돼서 다음 주도 그 핑계를 대고 나들이를 나올 수 있었지만 그건 택배로 받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아줌마들의 일상 속 잠깐의 일탈을 종료했다.
서울살이가 20년이 다되어가는데도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아직 아이들과 서울타워도 가보지 못했으니 말해서 뭐 하나?
나는 내가 서울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엄마랑 아빠랑 함께 부산에서 살 줄 만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친정 근처에서 살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이라는 타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게 될 줄이야. 그동안의 삶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대체적으로 좋았던 기억이 많지만 힘들고 슬펐던 적도 있었다.
남산타워는 서울에 살기 전 여행으로 왔을 때 올라가 봤었다. 안개가 잔뜩 낀 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 또 서울에 오겠냐며 꾸역꾸역 우기며 전망대에 올라갔었다. 정작 서울살이를 하면서는 서울역이며 명동역이며 근처를 수없이 지나다니고 심지어는 남산돈가스를 먹으러 왔었음에도 전망대는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부산 살 때, 친척들이 와야지만 갔던 해운대랑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쯤 올라갈 일이 생기겠지?
이번처럼 서울의 골목골목 여행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성수동을 가고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걷고 동대문 중앙아시아거리, 신사동 가로수길과 인사동, 북촌, 서촌 등 나름 구석구석을 다닌다고 해도 목적지를 향한 메인도로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는 이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갈 곳을 정하고 가는 방법을 정하고 음식점을 찾고 아이들의 상태와 반응을 살피고 이 모든 일이 다 내 몫이어서 즐길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물고기 반지를 살 거라는 핑계 아래, 이번 3주간의 단 3일 동안의 나름 재미있는 소소한 일탈의 시간이었다.
요즘 슬슬 폐경을 맞이하고 갱년기를 시작하고 아이들의 사춘기와 부딪히고 직장과 앞으로 다가올 노후, 몸소 느껴지는 약해져 가는 체력과 건강, 바쁘면서도 심심하고 삶이 허무하고 무기력해지는 내가 싫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뭐라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움직이는 것조차 싫은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럴 때는 가끔은 이런 의미 없는 골목길 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옆에 같이 다녀줄 사람이 있다며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