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마주친 흔한 1인

by 희량

90년대에 태어나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후변화는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화두다. 코로나19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코로나19가 내 일상에 미치고 있는 부분만 봐도 그렇다. 나는 대학은 졸업한 시점이라 놀 거 다 놀았다는 점에서는 매우 다행이지만, 혹한기 시베리아처럼 얼어버린 취업시장은 미래의 불안정성을 뼛속까지 실감하게 했다.


난 운 좋게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년 이래로 특히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현재가 위기 상황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 또래가 그렇다. 원래도 취업이 힘들었는데, 제일 고생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는 많이들 나온다. 취업은 힘들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코로나19 팬데믹에, 기후변화까지.


20대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충격은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주었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더 심화되면 또 어떤 재해와 사건사고들을 맞이하게 될지 두려움이 생겼다. 기후변화는 어떤 결과가 어디에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후변화의 예측불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후변화의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고, 어디든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내 또래, 대충 MZ세대를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우리는 점차 이 시대의 주역이 되어갈 것이다. 이제 막 첫발을 떼었고, 기후변화의 심화와 발맞춰 우리 또한 나이가 들어가고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나를 앞서간 수많은 분들도 마찬가지다. 그 말은, 우리는 모두 현재 기후변화의 피해자이자, 미래 기후변화의 책임자가 동시에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을 동시에 가져가게 될 것이다. 지금의 주역들인 중장년층이 현재의 기후변화를 책임지고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처럼.


인상 깊게 읽은 기사가 있다. 우리나라가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배출량을 지키지 못해 기후악당으로 낙인 찍힌 2035년의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작성하신 글이다. 여기서 제 마음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힌 구절이 있다.


당장 청년들의 시위가 거셌다. 젊은 시절 화석연료를 물 쓰듯 했던 노인들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감염병 관리규칙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삶을 누려보지도 못했던 이들은 이미 태생적 울분을 갖고 있었던 데다, 미리 피할 수 있었던 과거의 수많은 탄소 감축 기회들을 이기심과 무지로 날린 노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먼 미래에 세상이 엉망이 된다면, 아마 그 때쯤 내 또래는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쩌면 중장년층일 수도 있고. ‘젊은 시절 화석연료를 물 쓰듯 했던 노인들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었다.’라는 문장에서 미래의 나에게 책임의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동시에 이전 세대에 원망의 화살을 돌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건 모두가 마주한 위기다.


우리는 점점 기후변화의 결과를 일상해서 수도 없이 목도해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이 다가올 기후변화를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하는지.





*김성욱, "2035년 대한민국, 기후 디스토피아 미래 예측 보고서", 프레시안, 2020.09.16

*커버이미지 Elizeu Dias,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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