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관리

by 희량

평일의 습작(이하 평습)을 자투리 시간에 쓰기에 이르렀다. 잠에서 깨어난 후 침대 위에서도 쓰고, 똥 싸면서도 쓰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썼다. 오늘 건강검진을 하러 오기 전에도 대기 시간을 알차게 보내보겠다고 틈틈이 평습을 적어내려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과 카톡을 하며 낄낄거리는 시간과 인스타그램을 배회하는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노션(내게는 메모장과 같은 것)을 펼쳤다.


짬짬이 기록하는 것은 중한 습관이지만, 시간의 빈틈을 채우는 것은 그보다는 더 의무감에 휩싸인 일이다. 살짝 강박에 가깝다. 일정 사이사이 잉여 시간이 생기면 묵직한 불편을 느끼곤 한다. 하루의 빽빽함은 언제부터 권장되었던 걸까? 물론 이건 어느 디바이스로도 접근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작업 공간이 개발된 탓이기도 하지만, 시간 관리에 흠뻑 매몰된 나 때문이기도 하다.


때는 고등학교 시절. 1학년 때 학사반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했고, 심지어 수학은 30점을 찍었다. 그래서 2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희량아, 너 왜 이렇게 열심히 해!”라고 타박과 원망과 초조함이 조금씩 담긴 말을 건네곤 했었다. 그땐 정말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고, 점심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공부했다. 학교에서도 공부하고, 집에서도 공부했다. 그래서 샤워하는 시간도 줄여야 할 것 같았다. 밥 먹는 시간이나 이동 시간처럼 ‘공부하지 않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는 시간’으로 구분하면서 매일 그 비율을 따졌다.


그 때문인지 하루의 시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내면의 기준이 생겼다. 내게 중요한 시간과 중요하지 않은 시간을 구분했다. 전자는 공부하거나 사교적인 시간이 해당됐고, 후자는 혼자 밥을 먹거나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 나를 돌보는 시간, 또는 이동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소요 시간을 의미했다. 중요한 시간은 최대로 늘리고, 그렇지 않은 시간은 최소로 줄여야 시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절하는 거라 생각했다. 지금껏 이렇게 통속적인 생산성을 맹목적으로 지향해왔다.


그러나 매번 시간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일이 그렇게 둘로 반듯하게 나뉘어질 리도 없고, 심지어 의미 있는 시간의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밥을 먹고 주변을 청소하는 일을 삶에서 가장 중대한 일로 여길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삶을 누리는 최고의 휴식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동은 몸을 움직여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각에 잠기거나 스치는 풍경을 눈여겨보는 시간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워라밸은 다른 게 아니다. 미래를 챙기는 시간과 현재를 챙기는 시간의 균형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발전을 도모하는 시간과, 오늘을 더 활기차게 누리기 위해 일상을 꾸리는 시간을 모두 충실히 채워야 한다. 이 모든 시간이 나를 채우고, 서로 상호작용한다. 방송인 홍진경 님이 그랬다. 내 일상을 갖추는 일이 결국 내 일과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오늘의 나를 챙기는 일이 미래의 나를 더 낫게 하는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보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떵이가 비웃을 것 같다… 그는 삶을 잘 챙기는 일에 아주 능하고 관심도 많아 내 라이프스타일을 질색하는 편이니까. 실제로 난 이런 글을 쓰면서도 아직 오늘의 나를 돌보는 중요성에 대해 온전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어떤 시간은 아주 경시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요리하는 시간이 그렇다. 나를 위해 재료를 다듬고 볶고 끓이는 시간의 보람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 기다림의 대가가 그리 대단치 못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느리게 걷는 법은 나름 터득했다. 호흡부터 한 번 천천히 들이내쉬고 나서, 걸음의 속도에 여유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유리창에 비친 나랑 눈을 맞춰가며 걷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의 물꼬를 붙잡고 흘러가기도 한다. 여름철 한낮이더라도 그 산보는 산뜻하고 기껍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지그시 즐기는 법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제는 일상의 공간을 닦아가는 일에 조금씩 시선을 두어야지. 그래서 삶을 단단히 구성해 가야겠다… 생을 관통하는 지구력과 근력을 위해서라도.


그래도 회사 밖으로 나오고 나서 이분된 시간의 경계를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탈출한 세상에서 흐르는 일상은 꽤 리드미컬하다. 하루는 일로 빽빽한 날을 보내고, 또 다른 하루는 일은 느슨하게 하고 의무적이지 않은 일들로 한나절을 훌쩍 보내기도 한다. 삶의 시간은 생각보다 다채롭게 꾸며진다. 어느 것 하나에 치중할 수 없이. 치밀하게 붙잡지 못한 시간을 이제는 용서해야지. 촘촘하지 못한 헐거움에도 의무감을 느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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